우리가 평소 입고 다니는 ‘와이셔츠’라는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영어 Y 자 모양이라서 그렇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확신을 하고서 하는 대답이 아니다. 정답은 일본식 영어와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영어 white shirt의 앞 글자 white를 ‘와이’로 읽어 ‘와이셔츠’라는 이름이 만들어졌고 이 말이 그대로 한국에 들어왔다. 아마 열에 아홉 명은 ‘와이셔츠’에 얽힌 이러한 곡절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 어이가 없는 명칭이다.
우리가 마룻바닥 등에 광택을 내기 위해 칠하는 ‘니스’라는 명칭 역시 마찬가지다. varnish라는 영어의 앞과 뒤를 모두 떼어내고 중간 발음만 내서 ‘니스’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이다. 일본이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낸 일본식 영어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일본식 영어를 화제(和製, 중국이 자신들을 스스로 화(華)라고 부르듯, 일본은 스스로 화(和)라고 부른다.) 영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엉터리 영어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혹은 우리가 만들어낸 ‘콩글리시’라고 생각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티브이(TV)를 보면 ‘텐션’이니 ‘하이텐션’과 같은 자막이 계속 나온다. 이러한 말들도 일본식 영어다. 영어 high tension은 ‘고압’, ‘고전압’이란 의미다. 그래서 일본식 영어 ‘하이텐션’을 사용한 “You are high tension.”이란 문장은 ”“너는 고전압이구나.”라는 엉터리 영어가 되고 만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코 사용하는 “매너가 없다”의 ‘매너, manner’라는 영어에는 원래 우리가 사용하는 ‘예의’라는 뜻이 없다. 또 “센스가 있네”라는 말의 ‘센스, sense’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감각’이란 의미가 없다. ‘매너’나 ‘센스’라는 말 역시 일본이 마음대로 만들어낸 일본식 영어다.
그림 1. 한국에서 사용하는 외국어 중에도 일본식 영어가 꽤 많다.
물론 모든 외국어를 거부할 수는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 일정한 수준의 영어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어 가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으며, 더구나 우리가 사용하는 그 영어의 대부분이 엉터리 일본식 영어라는 점은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국가 차원에서 잘못된 일본식 영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근대 이래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국가가 된다’는 의미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해온 일본은 서구화를 지향하면서 일상 대화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화제 영어’라 하여 자기들 방식의 영어도 많이 만들어왔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용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결국 국제사회에서 올바른 의미로 통용될 수 없는 영어를 양산하였다.
우리는 이제껏 일본이 만든 그런 ‘비정상적인’ 용어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아무런 의식도 없이 사용해왔다. 우리가 크게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그러한 용어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채 통용되고 있다는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이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만큼, 왜곡된 의미를 주는 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쓸 게 아니라 소통에 걸맞은 올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바람직하다.
그림 2. 한국어의 자존감을 드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된 한글이라는 뛰어난 문자를 가진 민족이다. 이제 언어에서도 자존감을 드높일 때다. 비록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지금부터라도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을 꾸준히 바로잡아가는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할 때다.
소준섭(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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