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주도 무고한 양민 3만여 명이 학살당한 제주4.3항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가 있습니다. 비석 앞 설명판에는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 되는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4.3항쟁으로 붉은빛이 덧 씌워지고 냉전과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된 제주, 이제 그곳의 어둠을 걷어내고 해원의 살풀이를 해야만 합니다.
▲ <제주4.3항쟁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白碑), 설명판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라고 쓰여 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이 일어난 뒤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 단독선거, 단독정권 수립 반대를 목표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이 벌어진 것이 <제주4.3항쟁>입니다. 이 때 죽은 3만이란 숫자는 제주도민의 1/9 정도가 되기도 하지만, 이 희생자 가운데 33%가 노약자와 여성이며,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미군정은 제주도를 빨갱이섬(Red Island)이라고 낙인찍은 것은 물론 제주지구 사령관 브라운 대령은 “원인에는 흥미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라고 뜻을 밝혔지요. 이후 토벌대는 물론 극우 서북청년단의 초토화작전으로 인해 제주는 힘없는 양민들의 붉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임산부까지 학살당했던 제주도, 당시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 터였지요. 얼마 전 제주4.3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며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며, 4.3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내용이 담긴 펼침막이 걸린 적이 있는데 그래서 아직 <제주4.3항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 불바다가 된 중산간 마을의 처참한 모습, 토벌대가 저지른 방화로 중산간 마을은 2만여 채의 집이 불탔고, 중산간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되었다.(제주 4.3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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