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굴곡진 인생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근․현대사에 비참함으로 남을 격동기에 태어나 한 여자의 몸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다녔던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한 구석을 차지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아팠다.
어느 날 작은아들 동익의 조난 소식에 파란 눈을 한 동생을 “인디언을 개 잡듯 한 살인자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멸시하는 큰아들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 주인공 점례가 지나온 삶을 회상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일본 농장 주인을 폭행해 주재소에 끌려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죽기보다 싫은 주재소 일본 주임의 제안을 받아 들여 같이 살면서 그의 아이까지 낳았으나, 결국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해방과 함께 일본인 남편은 밤을 틈 타 일본으로 도망가 버린다. 일본인의 여인으로 살아 온 인생은 해방 이후에도 떳떳하지 못한 삶으로 이어지고,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큰 이모의 제안으로 아들을 친정에 맡겨두고 과거를 지운 후 한 남자와 결혼해 딸 둘을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조금씩 변해 가는 남편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어지던 중 한국 전쟁이 나고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남편은 공산당 부위원장의 직책으로 마을을 휘젓기 시작한다. 변해 버린 남편에게 적응하기도 전에 전세는 바뀌어 남편은 기약 없는 약속을 뒤로 한 채 떠나버리고, 두 딸과 남은 주인공은 남편의 죄로 인해 잡혀간다.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체 심문이 계속되던 중 둘째 딸이 미군 부대에 입원하고, 미국인 대위의 보증으로 풀려나지만 보증인 주변을 떠날 수 없어 미군의 가정부로 생활하게 된다. 둘째 딸은 결국 죽게 되고, 죽지 못해 살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결국 미군의 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 사람도 미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주인공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파는 장사를 시작하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큰 아들은 둘째 아들을 멸시하고, 혼혈아인 둘째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주인공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삶을 개척했지만, 자식들마저 그녀의 바람대로 되지 않고, 딸에게 남기는 글을 쓰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2011.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