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도감의궤 3

(얼레빗 제4800호) 51살 차이의 영조 임금과 정순왕후 혼례식

조선시대 때 임금이나 왕세자의 혼인은 나라의 큰 경사인데 《가례도감의궤》라는 책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혼례식을 치르기 위해 총괄 본부인 '가례도감'이 구성되었고 총책임자인 도제조는 영의정 등 정승급에서, 부책임자인 도제는 판서급에서 임명했습니다. 도제 3인 가운데 2인은 호조판서와 예조판서인데 의식 절차는 예조판서가, 행사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은 호조판서가 집행했지요. 그런데 《가례도감의궤》 가운데 66살의 영조 임금과 15살의 정순왕후가 혼인한 기록의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보물)》이 특히 눈에 띕니다. 51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이 세기의 혼례식은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시작으로 납채ㆍ납폐ㆍ고기ㆍ책비, 친영ㆍ동뢰 등 6례의 전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영조정순왕..

조선의 세자 - 세자의 혼례

6. 세자의 혼례 세자의 혼례(婚禮)는 가례(嘉禮)에 포함된다. 가례(嘉禮)는 원래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서 왕실의 혼인이나 책봉 등의 의식 예법을 모두 뜻했다. 《주례(周禮)》에서도 ʻ이가례친만민(以嘉禮親萬民)ʼ이라 하여, 가례(嘉禮)가 만민(萬民)이 참여하여 행할 수 있는 의식임을 설명했다. 그만큼 가례는 상하 모두가 함께 행할 수 있는 의례였다. 가례의 분류에는 본래 조정의 통상적인 예제 등이 폭넓게 포함되지만, 현존하는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등에서 사용되는 가례(嘉禮)는 왕실의 혼례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본래 가례에 책례와 관례가 모두 포함되는 만큼 여기서는 ʻ왕세자의 혼례ʼ로 구분하였다. 조선시대 궁중의 혼례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얼레빗 4629호) 조선시대 여성이 나들이할 때 썼던 쓰개들

조선시대 남녀 사이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또는 제도를 “내외(內外)”라 했습니다. 내외의 기원은 유교 경전 《예기(禮記)》 내측편(內則篇)에 “예는 부부가 서로 삼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니, 궁실을 지을 때 내외를 구별하여 남자는 밖에, 여자는 안에 거처하고, 궁문을 깊고 굳게 하여 남자는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여자는 임의로 나가지 않으며,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밖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한 예론에서 비롯되었지요. 이 내외법에 따라 여성들은 바깥나들이를 쉽게 할 수도 없었지만, 꼭 나들이해야 할 때는 내외용 쓰개를 써야만 했고, 가마를 타거나, 귀신을 쫓는 나례(綵棚儺禮)와 같은 거리행사 구경을 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용 쓰개의 종류를 보면 얇은 검정 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