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과서 2

(얼레빗 제4879호) 임금의 명으로 펴낸 개혁교과서 《반계수록》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펴내되, 단지 3건만 인쇄하여 바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1건은 곧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보내어 판본(板本)을 새기게 하고, 다섯 군데 사고(史庫)에 간직할 것도 또한 남한산성에서 인쇄해 가지고 오게 하였다.” 이는 《영조실록》 113권, 영조 45년(1769년) 11월 11일 기록입니다. 《영조실록》에도 오르고 임금이 직접 펴내도록 명한 《반계수록》은 조선 중기의 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쓴 책입니다. ▲ 유형원(柳馨遠)이 쓴 《반계수록(磻溪隨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형원이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 토지에 부과되던 조세)ㆍ군정(軍政, 병역 대신 옷감을 대신 받던 일..

(얼레빗 제4757호) 실학자 유형원이 쓴 개혁교과서 《반계수록》

‘개혁’은 한자로 ‘改革’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개(改)’는 고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가죽을 나타냅니다. 고대에 가죽은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의 계급과 신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죽옷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계급이나 신분이 바뀐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뜻이고 지금은 ‘개혁’이라 하면 낡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을 말하지요. 지금으로부터 352년 전인 1670년 조선 중기의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완성하고 1770년 경상감영에서 펴낸 《반계수록(磻溪隨錄)》은 그야말로 개혁교과서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이 일어나고 삼정(三政) 곧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