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베댐 3

암반온도가 200도, 터널공사에 강제동원 조선인

지난번에는 조선인들이 혹독한 노동을 한 구로베댐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조선인들이 일했던 구로베댐 공사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아보겠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로베댐(구로4댐, 1958~1963)은 구로3댐(1936~1940)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로3댐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중국 대륙으로 전선을 확대하게 되면서 군수품 생산을 위한 전력이 시급했기 때문에 추진되었다.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소기 때문에 게야키다이라(欅平)에서 센닝다니(仙人谷)까지 약 6km의 수로터널과 궤도터널을 뚫어야 했다. 그 가운데 아조하라다니(阿曾原谷)에서 센닝다니(仙人谷)까지 742m 구간은 암반 온도 최고 200도가 넘는 고열터널이고, 유황 냄새가 ..

일본 구로베댐, 세계문화유산 등재 또 노려

한국정부는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는 조건으로 와 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일본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뒤통수를 쳐 우리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선인 노동자가 참혹하게 죽어간 또 다른 곳 구로베(黒部)와 아시오(足尾)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추진중이다. 이에 일본 연구자 류리수 박사는 구로베댐 건설에 강제 동원되어 참혹하게 죽어간 조선인의 실상을 낱낱이 찾아내서 5회에 걸쳐 그 실상을 연재한다.  지난 7월 27일 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 정부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설명에 넣을 것을 약속받은 뒤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설명하겠다는 곳은 초라한 향토박물관이었고 그나마도 ..

군함도ㆍ사도광산에 이어 구로베댐ㆍ아시오광산

"작업 중 다이너마이트 불발탄이 폭발하여 눈앞에서 죽은 사람만도 10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손발이 갈가리 찢겨 나갔고, 바윗돌이 가슴을 덮쳐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사체의 행방은 잘 모른다. 강제징용자들은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상으로 죽었다. 터널 공사 중 나온 돌덩어리를 나르는 짐차에서 떨어지거나 터널 받침목을 제대로 설치 안 해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공사장에서 죽은 사람을 끌고 나가는 것을 수백 번 이상 목격했다.              - 나가노 히라오카댐(長野平岡) 강제연행노동자 김창희 증언, 경북 월성 출신, 160쪽 -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조선인 수는 얼마나 될까? 그들은 어디서 어떠한 극심한 노동을 하며 삶을 마감했을까? 조선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