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5

(얼레빗 제4816호) 김만중 《구운몽》,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인기

“전(前) 판서 김만중이 남해(南海)의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는데, 나이는 56살이었다. 사람됨이 청렴하게 행동하고 마음이 온화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매우 돈독했다. 벼슬을 하면서는 언론이 강직하여 선(善)이 위축되고 악(惡)이 신장하게 될 때마다 더욱 정직이 드러나 청렴함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고, 벼슬이 높은 품계(品階)에 이르렀지만 가난하고 검소함이 유생(儒生)과 같았다. 왕비(王妃)의 근친(近親)이었기 때문에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경계하여 권세있는 요로(要路)를 피하여 멀리했고, 양전(兩銓) 곧 이조판서와 병조판서 그리고 대제학을 극구 사양하고 제수받지 않으므로, 세상에서 이를 대단하게 여겼었다.” ▲ 서포 김만중 영정(대전시 문화재자료 제48호, 대전역사박물관 소장-왼쪽), 김만중의 《구운몽(九雲..

한글 위인 열전 - 한글로 소설 쓰는 사대부, 김만중

한글 문학을 사랑한 김만중 조선 후기 문신인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한문학만이 가치 있다고 여기던 당대 통념을 거부하고 ‘국문 소설’을 썼다. 한문을 떠받들던 당대 사대부들 속에서 그는 어떻게 한글로 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 김만중은 아버지 김익겸이 정축 호란(1637년)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면서, 형 김만기와 함께 홀어머니 윤씨 부인 슬하에서 성장했다. 윤씨 부인은 이조 참판 윤지(遲)의 딸로 명문가 출신답게 궁색한 살림 속에서도 아들들이 읽을 각종 서책을 구했고, 이웃의 홍문관 서리를 통해 책을 빌려 손수 베껴 옮겨서 교본을 만드는 등 자식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또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학문을 익혀 소양을 겸비했던 윤씨 부인은 ≪소학(小學)≫, ≪사략(史略)≫, ≪당률(當律)..

(얼레빗 4311호) 우리말로 시문을 써야 한다고 한 김만중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은 ‘국문가사예찬론’에서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는 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 다른 나라의 말에 불과함)’으로 보았으며, 정철(鄭澈)이 지은 <사..

(얼레빗 4215호) 김만중 어머니 과부 윤씨의 자식들 가르치기

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로 장희빈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그 김만중은 또 다른 고대소설 《구운몽(九雲夢)》으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한글본과 한문본이 모두 전하는 《구운몽》은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이 모친을 위로하기 위하여 ..

(얼레빗 3904호) 우리 고전소설 으뜸 김만중의 《구운몽》

한국문화편지 3904호 (2018년 09월 13일 발행) 우리 고전소설 으뜸 김만중의 《구운몽》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04][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숙종 때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년 ~ 1692년)이 지은 고전소설 《구운몽》이 있습니다. 《구운몽(九雲夢)》은 《금오신화(金鰲新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