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51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42,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엎어지다’와 ‘자빠지다’

언젠가 어느 교수가 내 연구실로 들어서며, “재수 없는 놈은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으며 받은 아픔을 털어놓겠다는 신호다. 혼자 속으로 ‘엎어지면 제아무리 재수 있는 놈이라도 코가 깨지기 십상이지.’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야기를 들어 주느라 애를 먹었다. 이분은 “재수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하는 속담에서 ‘자빠져도’를 ‘엎어져도’로 잘못 알고 쓴 것이다. 어찌 이분뿐이겠는가! 살펴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요즘 젊은 사람의 열에 예닐곱은 ‘엎어지다’와 ‘자빠지다’를 제대로 가려 쓰지 못하는 듯하다. 제대로 가려 쓰자고 국어사전을 뒤져 보아도 뜻 가림을 올바로 해 놓은 사전이 없다. 우리말을 이처럼 돌보지도 가꾸지도 않은 채로 뒤죽박죽 쓰면..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41,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슬기’와 ‘설미’

우리 토박이말에는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에 쓸 낱말이 모자라 그 자리를 거의 한자말로 메워 쓴다. 이런 형편은 우리말이 본디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머리를 써서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우리말을 팽개치고 한문으로만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으면 말은 거기 맞추어 생겨나는 법인데, 그들은 우리말에 도무지 마음을 주지 않았다. 조선 왕조가 무너질 때까지 이천 년 동안 그런 분들은 줄곧 한문으로만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려 했기에 우리말은 그런 쪽에 움도 틔울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노릇은 이처럼 애달픈 일을 아직도 우리가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려는 학자들이 여전히 우리말로 그런 일을 하려 들지..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30,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배알’과 ‘속알’

‘배알’과 ‘속알’은 오랜 업신여김과 따돌림 속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낱말들이다. 그런 가운데서 ‘배알’은 그나마 국어사전에 올라서 목숨을 영영 잃지는 않았다 하겠으나, ‘속알’은 아주 목숨이 끊어졌는지 국어사전에조차 얼씬도 못 하고 있다. 국어사전들에서 풀이하고 있는 ‘속알’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알맹이. (평북)   2)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열매의 속알맹이 부분.   3) ‘알맹이’의 방언. (평북) 이런 풀이는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속알’의 뜻과 사뭇 다른 엉뚱한 풀이들이다.국어사전에 올라 있다는 ‘배알’은 풀이가 또 이렇다.    1) ① 동물의 창자. ② ‘사람의 창자’의 낮은말. ③ ‘부아’의 낮은말. ④ ‘속마음’의 낮은말. ⑤ ‘배짱’의 낮은말.   2) ‘밸..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 중국 글말 끌어와 망쳐 놓은 삶

우리 겨레의 삶을 구렁으로 몰아넣은 옹이는 바로 중국 글말인 한문이었다. 기원 어름 고구려의 상류층에서 한문을 끌어들였고, 그것은 저절로 백제와 신라의 상류층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말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우리말에 맞추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쪽으로는 중국 글자(한자)를 우리말에 맞추는 일에 힘을 쏟으면서, 또 한쪽으로는 한문을 그냥 받아들여 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자로 우리말을 적으려는 일은 적어도 5세기에 비롯하여 7세기 후반에는 웬만큼 이루어졌으니, 삼백 년 세월에 걸쳐 씨름한 셈이었다. 한문을 바로 끌어다 쓰는 일은 이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져, 고구려에서는 초창기에 이미 일백 권에 이르는 역사책 《유기》를 펴냈고, 백제에서는 4세기 후반에 고흥이 《..

정겨운 토박이말과 문학의 향기 - 통영 편

통영은 예향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 등 수많은 예술가를 낳았다. 특히 아름다운 글을 남긴 문인들이 많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정겨운 우리말을 재발견하게 된다.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대진고속도로를 5시간쯤 달리면 우리나라의 남쪽 끝인, 통영에 도착한다. 첫 목적지인 박경리기념관까지는 400킬로미터쯤 된다. 이토록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온 이유는 조금 남다르다. 그 흔한 먹고 쉬는 여행이 아닌, 느긋하게 우리말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부슬비가 내렸다가, 다시 햇빛이 쨍하게 비춘다. 이번 통영 여행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다. 우리말을 따라 느루 거닐다. 박경리기념관 박경리기념관은 통영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양읍에 자리 잡고 있다. ..

‘가지다’와 ‘지니다’의 차이

예전에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아내의 사진을 늘 지갑 속에 갖고 다닌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말솜씨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늘 가지고 다닌다’는 표현이 알맞은 것일까? ‘가지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무엇인가를 손이나 몸에 있게 하다.”라는 뜻과 “자기 것으로 하다.”는 뜻이 대표적으로 올라 있다. 이 가운데, “주운 돈을 가지다.”, “몇 십 년 만에 내 집을 가지다.”처럼 “자기 것으로 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가지다’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있다.”와 같이 “무엇인가를 손이나 몸에 있게 하다.”는 뜻으로 쓸 때에는 ‘지니다’는 말과 잘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지니다’는 “몸에 간직하여 가지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얌치 같은 계집애?

요즘 뉴스를 듣다 보면 염치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염치’라는 말의 뜻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염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가 건강하게 움직인다. 한자말에서 온 이 ‘염치’는 소리가 변하여 ‘얌치’로 쓰이기도 한다. ‘염치’와 ‘얌치’는 뜻이 같은 말이므로 ‘얌치’라고 해도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참 좋은 마음을 가리킨다. ‘염치’나 ‘얌치’나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부끄러움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얌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얌치 같은 계집애!”란 대사가 가끔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얌치가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