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문화의 터전 4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건물의 위계: 전당합각재헌루정

4. 건물의 위계: 전당합각재헌루정 궁궐에서는 위로 임금으로부터 최하층의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였다.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의 기거 활동 구역이 나뉘어 서로 섞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같은 구역 안에서도 건물들은 제각각 그 주인의 신분과 직임 및 건물의 용도에 따라 위계(位階)를 달리하였고, 위계에 따라 외형이 달라졌고, 기능도 달라졌다. 이러한 각 건물의 위계와 형태, 기능은 그 이름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독립적인 건물에는 거의 이름을 지어 붙였는데, 이름의 앞부분은 고유명사인데 비하여 이름의 끝에는 건물임을 뜻하는 글자를 붙였다. 그 끝 글자들은 다양하지만 이를 간추려 보면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궁궐의 짜임과 쓰임새

3. 궁궐의 짜임과 쓰임새 궁궐은 궁성(宮城)이라고 하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궁성에는 요소요소에 문이 나 있다. 그 문들 가운데 대개 남쪽으로 나 있는 문이 으뜸가는 문, 대문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외부에서 들어온 신하들이 임금에게 충성의 의식을 치르는 공간인 외전(外殿)이 배치되어 있다. 외전은 다시 행각으로 둘러싸인 구역이 두 세 겹 겹쳐 있는데 가장 안쪽 구역이 외전의 중심을 이루는 주 행사장이다. 행각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중앙에서 뒤편에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임금이 주인이 되는 공식 행사에 주로 쓰였다. 그렇게 용도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법전(法殿)이라고 부른다. 또 이 구역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중심 건물이라는 뜻으로 정전(正殿)이라고 ..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궁궐의 역사: 양궐체제의 변천

2. 궁궐의 역사: 양궐체제의 변천 “서울에는 궁궐이 다섯이 있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이 다. 왕국이 사라지고 임금도 사라진 오늘날 대한민국 서울에는 궁궐이 있을 수 없다. 예전에 있었다는 뜻이라면 궁궐이 아니라 고궁(古宮)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에 고궁이 다섯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고궁이라고 하려면 어느 정도는 궁궐 모양을 갖추어야 할텐데 다섯이 모두 고궁 모양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서울에 있던 궁궐을 다 따지면 다섯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그 다섯 궁궐이 동시에 있었던 적은 없다. 하나만 있던 적도 있고, 많을 때는 넷이 있기도 하였다. 궁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갔다. 이러한 궁궐의 변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서울과 궁궐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홍 순 민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1. 서울과 궁궐 “침묘(寢廟)는 조종(祖宗)을 받들어 효성과 공경을 높이려는 곳이요, 궁궐은 존엄을 과시하고 정령(政令)을 내려는 곳이며, 성곽(城郭)은 안팎을 엄하게 구별하고 나라를 공고히 하려는 곳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소유한 이라면 마땅히 먼저 갖추어야 할 바입니다.” 태조 3년, 1394년 11월 3일 한양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한 뒤에 당시 관서들 가운데 가장 고위 관서인 도평의사사에서 올린 보고서의 내용이다. 임금은 왕조국가의 주권자이자 통치자였다. 임금이 거주하는 도시를 왕도(王都)라고 한다. 한국사에서는 왕도가 곧 수도(首都)였다. 왕도이자 수도인 도시에는 여타 도시에는 없는 시설물이 셋 있었다. 종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