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처참 5

(얼레빗 제4992) 184년 전 오늘, 제주로 유배 간 추사 김정희

“국청(鞫廳, 조선 때, 역적 등의 중죄인을 신문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했던 관아)에서 가두어둔 죄인 김정희(金正喜)를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도록 하라.“ 《헌종실록》 7권, 헌종 6년(1840년) 9월 4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로써 조선 후기 선비이자 금석학자, 문인화가, 서예가로 그 이름을 중국에까지 알렸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를 가게 됩니다. ▲ 제주 대정현의 추사가 위리안치되었던 집 여기서 ‘위리안치(圍籬安置)’란 죄인이 귀양살이하던 곳에서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을 말합니다. 그는 탐관오리를 탄핵하다가, 임금과 신하 사이를 이간시킨다는 사유로 임금의 미움을 사서 추자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

(얼레빗 제4791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150년 앞선 탁영거문고

조선 중기의 사대부 화가 낙파 (駱坡) 이경윤( 李慶胤, 1545∼1611)의 에는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줄이 없는 것이 거문고일 수가 있나요? 중국의 도연명이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했다는 그 무현금이지요. ▲ 이경윤(李慶胤)의 , 비단에 수묵, 고려대학교박물관 선비들이 마음을 닦기 위해 연주했다는 거문고. 그래서 줄이 없어도 가능했던가 봅니다. 거문고를 즐겼던 안평 대군(安平大君)과 임영 대군(臨瀛大君)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세조는 배우지 않았어도 거문고를 잘 타서 아버지 세종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피리를 불자 학이 ..

우리가 모두 주모자다, ‘사발통문’

1894년 1월 봉건적 수취체제의 모순에 대항하여 고부 농민 봉기로부터 시작된 ‘동학혁명운동’은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운동’, ‘동학난’이라고도 부릅니다. ‘동학혁명운동’은 조선 후기 농민항쟁을 통한 농민들의 각성과 성장을 바탕으로, 동학의 조직을 이용하여 봉건제도의 모순과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반대한 대규모 반제ㆍ반봉건투쟁이었지요. 그런데 이때 전봉준ㆍ송두호 등 농민지도자 20여 명이 11월 초순 모여 방 가운데 백지를 펼치고 백지 가운데에 큰 사발을 엎어 놓고 사발을 중심으로 각자의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왼쪽에 “고부 군수 조병갑의 목을 베고, 서울로 올라가자”라는 글을 써넣었습니다. 이를 ‘사발통문’이라 하는데 이때 만든 사발통문은 고부의 이집강(관가의 일에 협조하는 마을 책임자)에게 ..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150년이나 앞선 탁영 거문고

조선 중기 사대부 화가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의 를 보면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중국의 도연명은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라고 했다지요. 옛 선비들은 마음을 닦기 위해서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줄이 없어도 괜찮았던가 봅니다. 아!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현재 전해지는 거문고 가운데 가장 외래되었다는 ‘탁영거문고’에 새겨진 시입니다. 탁영거문고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27세였던 성종 21년(1498년)에 34세의 나이로 능지처참을 당했지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