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18

(얼레빗 제4970호) 오늘(07.22.) 대서, 찜통더위와 불볕더위는 다른 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두째인 대서(大署)입니다. 그리고 사흘 뒤면 중복(中伏)으로, 아직 장마철이기는 하지만, “염소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더위가 가장 심한 때입니다.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라는 옥담(玉潭) 이응희(1579~1651) 시 가운데 나오는 구절은 이즈음의 무더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는데 이런 불볕더위, 찜통더위에도 농촌에서는 논밭의 김매기, 논밭두렁의 잡초베기, 퇴비장만 같은 농작물 관리에 쉴 틈이 없지요. 이때 우리는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청의 재난문자를 받고는 합니다. 여기서 하루 가장 높은 기온이 33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경보’를 보냅니다. 그런데 기상청..

(얼레빗 제4842호) 오늘 입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줘

“五六월 또약볕에 살을 찌는 한 더위로 뭇인간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덕이더니 오늘이 립추(立秋), 제 그러케 심하던 더위도 이제부터는 한거름 두거름 물러가게 되엇다. 언덕우 밤나무가지와 행길옆 느티나무위에선 가을을 노래하는 매암이 소래도 차(寒)가고 아침저녁 풀숲에는 이슬이 톡톡하게 나려 인제 먼 마을 아낙네의 옷 다듬는 소리도 들려올것이요. 삼가촌(三家村) 서당아해들의 글읽는 소리도 랑낭히 들려올 때다. (가운데 줄임) 오늘 아침쯤 그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젓는지 정히 궁금하다." 위는 동아일보 1938년 8월 9일 “지하의 궁음(窮陰)이 나와 염제(炎帝,무더위)를 쫓는다” 기사 일부인데 마지막 단락의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지는지 궁금하다”라는 말이 참 정겹습니다. 아직 불볕더위가 ..

(얼레빗 제4838호) 대서, 신선이 바람 한 줄기 보내주네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 가슴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았노라 옥경의 신선 벗이 나를 지성스레 생각해 주어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보내주었구려 무더위가 쇠를 녹인다는 말은 한여름 더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는 1940년에 펴낸 옥담 김위원(金偉洹)의 시문집 《옥담고(玉淡稿)》에 나오는 한시 ‘부채선물에 화답’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 번째로 오는 “대서(大暑)”입니다. 사무실 안에서야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겠지만 들판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이나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서와 같은 한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절기입니다. 더울수록 혀끝에서는 찬 것이 당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운 음식으로 몸을 보양해온 게 옛사람들의 슬기로움입니다. ▲ 무더운 여름날, ‘이열치열’..

우리말 탐구 - 그저 매서운 추위?두 개의 뜻을 가진 ‘강추위’

‘여름이 더우면 겨울이 춥다.’는 속설이 있다. 올 여름에 불볕더위가 심했던 탓에 올 겨울에는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강추위’라는 말을 두고 ‘심한 추위’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강추위’는 두 가지 뜻이 있는 동음이의어다. 일 음절 한자어 접사 ‘강(强)-’과 ‘추위’가 합해진 ‘강(强)추위’와 순우리말인 ‘강추위’는 소리와 모양은 같으나 그 뜻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심한 추위’라는 뜻으로 쓰는 ‘강추위’는 접사 ‘강(强)-’이 쓰인 ‘강(强)추위’일까? ‘강추위’일까? 접사 ‘강(强)-’은 일부 명사 앞에 붙어 ‘매우 센, 호된’이라는 뜻을 더한다. ‘강(强)추위’는 ‘눈이 오고 매운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를 뜻하며, 다음과 같이 쓰인다 다..

비에 관한 우리말글

장마가 길어지면서, 집집마다 습기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요즘 내리는 비는 장맛비이다. ‘장마비’가 아니라 ‘장맛비’[장마삐]라고 해야 표준말이 된다. 옛날에는 장마를 ‘오란비’라고도 했지만, 요즘에는 이 ‘오란비’란 말이 ‘장맛비’에 거의 떠내려가 버려서 옛말로만 남고 말았다. 이제 이 달 하순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지는 날이 많아질텐데, 이처럼 “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를 ‘작달비’라고 한다. 작달비를 만나면 우산도 별 소용이 없게 된다. ‘작달비’와 정반대되는 비가, 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 ‘잔비’이다. 잔비도 여러 날 내리게 되면 개울물을 누렇게 뒤덮는다. 개울가나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진흙이 있는데, 이 흙을 ‘명개’라고 한다. 장..

다이어트

오월의 신록이 아직 한창인데 한낮에는 벌써 초여름 무더위의 향기가 난다. 이 싱그러운 계절을 좀 더 누리고 난 뒤에 더위를 만났으면 싶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노출의 계절을 맞이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군살을 빼고 싶다. 우리는 살을 빼는 모든 행위를 ‘다이어트’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diet)는 ‘살찌지 않는 음식’이나 또는 ‘식이요법’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영어이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살 빼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가령 “다이어트하기 위해 수영장에 다닌다.”라든지, “에어로빅은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은 잘못이다. 음식을 조절하여 살을 빼려는 이들은 “다이어트로 살을 빼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운동으로 살을 빼려는 이들은 다른 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소리 내고 저렇게 쓰는 말들

말을 할 때는 못 느끼다가도 막상 글로 옮겨 적을 때에는 표기가 헛갈렸던 경험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사귀다’라는 말을 ‘사귀어’, ‘사귀었다’처럼 표현할 때 현실적으로 [사겨], [사겼다]로 줄여서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준말을 옮겨 적을 방법이 없다. 한글에는 ‘위’와 ‘어’ 소리를 합친 모음자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겨], [사겼다]로 소리 내고 ‘사귀어’, ‘사귀었다’로 적는다. 달궈진 프라이팬이나 뜨거운 그릇을 모르고 만졌을 때, “앗 뜨거!” 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짧은 비명을 글로 옮겨 적을 때에는 “앗 뜨거!”라고 적으면 안 된다. ‘뜨겁다’는 ‘뜨거워’, ‘뜨거우니’, ‘뜨거워서’ 들처럼 어미변화가 일어나는 말이므로, 이때에는 “앗 뜨거워!”..

[노래에서 길을 찾다]14-여우비

오란비는 끝이 났는지 무더위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빛무리 한아홉(코로나 19)까지 더해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은 요즘입니다. 곧 입마개를 벗고 나날살이(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들려 드릴 노래는 '여우비'입니다. 노래 이름인 '여우비'는 '볕이 나 있는 날 아주 짧게 오다가 그치는 비'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어서 이런 비라도 내리면 불같은 햇볕에 데워진 땅이 좀 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라는 극의 벼름소노래(주제곡)로 지(G). 고릴라 님이 노랫말을 짓고 가락을 붙여 이선희 님이 불렀습니다. 노랫말을 살펴보면 '심장' '당신', '한심스럽고',..

[토박이말 살리기]1-61 되숭대숭하다

여러 날 동안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나니 그야말로 무더위가 참맛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무더위'는 왜 '무더위'라고 할까? 물었더니 어떤 사람이 "무지 더워서 무더위라고 한다."며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말장난 삼아 풀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무더위'는 '물+더위'로 여러 날 비가 이어져서 '물기를 잔뜩 머금어서 찌는 듯이 견디기 어려운 오늘 같은 더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풀이를 해 주었답니다. 날씨가 이렇게 무더우면 서로 고운 말을 주고받을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 말을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되숭대숭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말을 종작없이 지껄이다.'로 풀이를 하고 있고 보기월은 없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