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11

우리말 탐구 - 곡식은 영글기도 하고 여물기도 한다

봄철 이상 저온과 여름철 폭염으로 농부들의 한숨이 잦았던 한 해였지만, 깊어 가는 가을 속 오곡백과는 그간의 고생을 씻어 주듯 알알이 여물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수확의 계절 가을에는 ‘과실이나 곡식 따위가 알이 들어 딴딴하게 잘 익다’를 뜻하는 ‘여물다’와 ‘영글다’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영글다’와 ‘여물다’는 옛말 ‘염글다’와 ‘여믈다’에 어원을 두고 있어, 어원적으로도 근거가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널리 쓰여 모두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한때 ‘영글다’가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던 탓에 간혹 ‘영글다’를 ‘여물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지만, ‘여물다’와 ‘영글다’는 복수 표준어다. 그래서 곡식이나 과실이 잘 익었다는 뜻으로 사용할 때는 둘 중 어느 것을 써도 상관없다. ‘알차게 여..

'어쩔티비'보다 심각한 공공언어

며칠 전 한글 관련 기삿거리를 찾다가 재밌는 영상을 봤다. 배우 신혜선씨가 '에스엔엘(SNL)코리아'라는 예능 방송에 청소년 역할로 출연한 상황극이다. 그는 소심한 전학생으로 기존 학생들의 텃세를 누르기 위해 유행하는 최신 은어를 훈련한다. 소위 그들만의 말발 싸움이다. "어쩔티비~저쩔티비~안물안궁(어쩌라고, 저쩌라고,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 그는 곧 아찔한 말솜씨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은어가 방언의 갈래인 걸 알아야 한다. 방언은 지역 방언과 사회 방언으로 나뉜다. 그중 은어가 속한 사회 방언은 세대, 소속 집단 등 이해관계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 말하는 법이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은어를 구사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1997년..

모밀국수 사리 주세요!

더운 날씨에 많이 찾게 되는 음식 가운데, ‘모밀국수’라 불리는 국수가 있다. 대나무 발에 받친 면을 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에 담갔다 먹는 그 시원한 맛! 그러나 ‘모밀국수’는 ‘메밀국수’라고 해야 맞다. ‘모밀’과 ‘메밀’은 모두 우리말로서, 이 가운데 ‘메밀’이 오늘날 표준말로 정착하였고,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쓰이던 ‘모밀’은 방언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밀묵이나 모밀떡 들과 같은 말들도 모두 메밀묵, 메밀떡으로 써야 한다. 면을 더 주문할 때, “사리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사리’는 국수를 동그랗게 감아놓은 뭉치를 세는 단위이지, 국수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 두 그릇 하고 세듯이, 국수 한 사리, 두 사리 하고 세는 ..

가시나

경상도 지역에서는 여자아이를 낮추어 부를 때 ‘가시나’라고 말한다. 이 말의 표준말은 ‘계집아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시나’는 방언으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나이를 따져보면, ‘계집아이’보다 ‘가시나’가 훨씬 오래 전부터 쓰이고 있는 말이다. 다만, 지금처럼 여자아이를 낮춰 부르던 말은 아니었다. ‘가시나’의 ‘가시’는 꽃을, ‘나’는 무리를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나’의 형태는 오늘날 ‘네’로 바뀌어서, 여전히 어떤 말 뒤에 붙어서 ‘그 사람이 속한 무리’라는 뜻을 보태주는 접미사로 쓰이고 있다. 가령 ‘철수네 집’이라고 하면, 철수와 그 가족이 사는 집을 말하게 된다. 곧 옛말 ‘가시나’는 ‘꽃의 무리’라는 뜻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어여쁜 처녀들을 뽑아 각종 기예를 익히게 ..

제3장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제3절 방언 제24항

제24항은 제23항고 마찬가지로 방언이던 단어를 표준어로 삼은 규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애초의 표준어를 아예 버린 것이 다르다. ① 방언형이었던 ‘까뭉개다’가 표준어였던 ‘까무느다’보다 널리 쓰이므로 ‘까뭉개다’를 표준어로 삼고 ‘까무느다’를 표준어에서 제외하였다..

제3장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제3절 방언 제23항

제23항은 방언이라도 매우 자주 쓰여 표준어만큼 혹은 표준어보다 훨씬 더 널리 쓰이게 된 말은 표준어로 새로이 인정한 것이다. ① ‘멍게’와 ‘우렁쉥이’ 중에서 ‘우렁쉥이’가 전통적 표준어였으나, ‘멍게’가 더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멍게’도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이때 ..

제2장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제2절 모음 제10항

일부 방언에서는 이중 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한다. 가령 ‘벼’를 [베]라고 발음하는 일이 있다. 또한 ‘사과’를 [사가]로 발음하는 것과 같이 ‘ㅚ, ㅟ, ㅘ, ㅝ’ 등의 원순 모음을 평순 모음으로 발음하는 일은 더 흔히 일어난다. 그러나 이 조항에서 다룬 단어들은 표준어 지역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