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3

토박이말의 속살 17 - ‘쌀’

땅 위에 몸 붙여 사는 사람 가운데 열에 여섯은 ‘쌀’을 으뜸 먹거리로 삼아서 살아간다고 한다. 말할 나위도 없지만 우리 겨레도 쌀을 으뜸 먹거리로 삼아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 토박이말에는 ‘벼’와 ‘쌀’에 따른 낱말이 놀랍도록 푸짐하다. 우선 내년 농사에 씨앗으로 쓰려고 챙겨 두는 ‘씻나락’에서 시작해 보자. 나락을 털어서 가장 알찬 것들만 골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듬해 봄까지 건드리지 않도록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것이 ‘씻나락’이다. 그러나 귀신까지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배고픈 귀신이 씻나락을 찾아 까먹으면서 미안하다고 혼자 군소리라도 하는 것일까? 알아들을 수도 없고 쓸데도 없는 소리를 이른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 한다. ▲ 곡우 때가 되면 못자리용 볍씨 곧 씻나락을 꺼내 물 채운 항..

(얼레빗 제4974호) 백제 비류왕 때 쌓은 김제의 ‘벽골제’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는 신도 또한 한 번 가서 보았는데, 그 둑을 쌓은 곳이 길이가 7천1백 96척(1척≒ 30.3cm, 약 2.18km)이고 넓이가 50척(약 15m)이며, 수문이 네 군데인데, 가운데 세 곳은 모두 돌기둥을 세웠고 둑 위의 저수한 곳이 거의 일식(一息, 30리로 약 11.79km)이나 되고, 뚝 아래의 묵은 땅이 광활하기가 제(堤, 방둑)의 3배나 됩니다. 지금 농사일이 한창이어서 두루 볼 수 없으니, 농한기를 기다렸다가 상하의 형세를 살펴 다시 아뢰겠습니다.” ▲ 지금은 벽골제 제방을 따라 작은 수로만 남아있다.(최우성 기자) 위는 《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1415년) 8월 1일 치 기록으로 전라도 관찰사 박습이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에 관해 아뢰는..

맛의 말, 말의 맛 - 잡스러운 곡식의신분 상승

‘혼분식’이란 말이 널리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무언가를 섞어 먹는다는 ‘혼식(混食)’과 가루를 먹는다는 ‘분식(粉食)’이 합쳐진 말이다. 쌀이 귀하던 1970년대 후반까지 장려 운동을 벌이며 널리 쓰이던 말이다. 무엇을 섞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가루는 또 무엇인가? 쌀과 같이 밥을 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섞는’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잡곡’을 뜻한다. 또한 곱게 빻아 낸 모든 곡물이 ‘가루’가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밀가루’에 한정된다. 한마디로 일정 비율 이상의 잡곡을 섞어 밥을 지어 먹고, 때때로 밥 대신 밀가루 음식을 먹으라는 뜻이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잡곡’은 억울한 말이다. 한자로는 ‘雜穀’이라 쓰니 잡스러운 곡식이란 뜻이다. ‘雜(잡)’과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