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3

행간과 여백

행간과 여백 또 한 가지, 글쓰기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여백'이다. 종이를 꽉 채운 것보다는 여백 있는 그림이 보기에 편하다. 생각할 공간과 여지도 더 많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설명으로 가득 찬 글은 읽기가 벅차다. 글 쓴 사람이 설명을 다 해주기 때문에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다. '설명'을 하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듯 '현장'을 보여주는 글이 낫다. - 공상균의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중에서 - * '위대한 책은 행간이 넓은 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전들은 행간이 넓습니다. 여백이 있고, 글이 곧 그림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고 삶의 지혜가 쌓여가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행간이 이윽고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백도 생깁니다. 삶의 기쁨입니다.

재미있는 우리 속담 - 놀란 토끼 벼랑바위 쳐다보듯

속담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켜켜이 쌓아 온 지층의 단면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나 판소리에 속담이 슬쩍 끼어들기도 하고 노래나 판소리의 한 구절이 속담으로 다시 전승되기도 합니다. 이름난 소설이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처럼 공유하는 사람살이의 한 장면을 대변합니다. 예를 들어 춘향이네 집의 속사정이나 심 봉사의 기구한 사연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직접 겪은 일인 양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곤 하지요. 밥 얻으러 온 동생에게 밥풀 묻은 주걱이나 날리는 놀부의 심보에 같이 분개하기도 하고 춘향이가 보고 싶어 애타는 이 도령의 심정을 자신의 일처럼 애닳아하기도 합..

느림

느림 느림이란 곧, 초秒들이 줄지어 나타나 마치 바위 위에 내리는 보슬비처럼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질 때까지 시간과 완벽하게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의 늘어남은 공간을 깊이 파고든다. 이것이 바로 걷기의 비밀들 가운데 하나다. 풍경에 천천히 다가가다 보면 그 풍경이 조금씩 친숙해지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자주 만나다 보면 우정이 깊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 프레데리크 그로의《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중에서 - * 어제 급하게 걸었던 길을 오늘은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어느새 땅이 촉촉해지고 바람에 걸려있는 봄의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천천히, 느리게 걷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발걸음과 호흡을 맞추고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공간의 세세한 부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