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배 3

(얼레빗 4700호) 조선시대 정초 풍속, 세함에 이름 적기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각사의 서리배(관아에 딸려 말단의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이들)와 각 군영의 장교와 군졸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원과 선생의 집에 들인다. 문 안에는 옻칠한 소반을 놓고 이를 받아두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하며, 지방의 관청에서도 이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1819년 김매순(金邁淳)이 한양(漢陽)의 세시기를 쓴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설날부터 정월 초사흗날까지는 승정원과 모든 관청이 쉬며, 시전(市廛) 곧 시장도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고 합니다. 이때는 서울 도성 안의 모든 남녀가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했다 하며, 이 사흘 동안은 정승, 판서와 같은 고위 관원들 집에서는 세함만 받아들이되 이를 문 ..

정초의 방명록 ‘세함’을 아십니까?

정초의 방명록 ‘세함’을 아십니까? 각사의 서리배와 각영의 장교와 군졸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원과 선생의 집에 들인다. 문 안에는 옻칠한 소반을 놓고 이를 받아두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하며, 지방의 아문에서도 이러하였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또 한양(漢陽)의 세시기를 쓴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설날부터 정월 초사흘 날까지는 승정원과 모든 관청이 쉬며, 시전(市廛) 곧 시장도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고 합니다. 서울 도성 안의 모든 남녀가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왕래하느라 떠들썩했다고 하지요. 한편 이 사흘 동안 정승, 판서 같은 고위관원의 집에서는 세함만 받아들이되 이를 문 안으로 들이지 않고 사흘 동안 그대로 모아 두었다고 합니다...

(얼레빗 4009호) 명함을 대신해 설날 무렵에 썼던 세함

4009호 (2019년 02월 07일 발행) 명함을 대신해 설날 무렵에 썼던 세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09][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설날 아침이면 일찍이 남녀노소가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뒤에 할아버지ㆍ할머니, 아버지ㆍ어머니 등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 다음 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