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관 5

조선의 천문과학 -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체계 확립 ‘측우기(測雨器)’

4.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체계 확립 ‘측우기(測雨器)’ 삼국 시대부터 국가가 성립되고 농사가 중요한 생업이 되자 사람들은 비, 바람,구름 등 기상(氣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농경 사회에서 잦은 가뭄과 홍수에 의한 농업 및 인명 피해는 아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특히 강우량은 농사의 풍년 또는 흉년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비의 양을 측정하기 시작하였다. 측우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강우량 측정 방법은 비가 오면 흙을 파서 빗물이 땅속에 스며든 깊이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방법은 정확한 강우량을 측정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측우기 발명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데, 세종 23년(1441년) 8월에 호조에서 임금께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각 도 감사(監司)가..

조선의 천문과학 - 해시계와 별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3. 해시계와 별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천문 관측 의기(儀器)로서, 세종 19년(1437년)에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 기기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해시계의 원리와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회전한다는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일성정시의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사용법은 세종 19년(1437년)의 『세종실록』에 실린 김돈의『간의대기』서문 중「일성정시의명병서(日星定時儀銘幷序)」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에는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하였는데, 이..

조선의 천문과학 - 자동시보 천문시계 ‘보루각 자격루’

조선의 천문과학 윤 용 현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총괄과장 예로부터 하늘의 변화를 하늘의 뜻이거나 하늘의 명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옛 사람들은 하늘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그래서 해와 달 그리고 별을 관측하여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깨닫고 하늘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농경 국가로서 비와 바람 등 천기의 변화가 지대한 관심사 중의 하나여서 천문 관측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하늘의 변화는 왕실과 백성들의 평안과 직결되는 신의 뜻이라고 여겨 항상 주의 깊게 하늘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학사는 천문과학과 함께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동기시대부터 하늘을 관측해 다양한 기록을 남겨 왔으며 삼국 시대와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높은 수준의 천문과학을 발전시켰..

(얼레빗 4578호) 세종이 구조를 제안하여 만든 ‘일성정시의’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 밤낮으로 기상의 상태를 알기 위해 천문의 이동이나 천기의 변화를 관측하는 기기)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하였는데, 이를 완성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모두 네 벌인데, 하나는 궁궐 안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으로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셋은 발이 있어 바퀴자루[輪柄]를 받고 기둥을 세워 정극환(定極環, 별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을 받들게 하였다. 하나는 서운관(書雲觀)에 주어 점후(占候, 구름의 모양ㆍ빛ㆍ움직임 등을 보고 길흉을 보는 점)에 쓰게 하고, 둘은 함길ㆍ평안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눠주어 경비하는 일에 쓰게 하였다.” ▲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복원품, 53×164.5cm, 국립민속박물관 이는 《세종실록》 19년(1437년) ..

(얼레빗 4341호) 세계 처음 만든 측우기와 측우대 국보되다

“서울에서는 쇠를 주조(鑄造)하여 기구를 만들어 이름을 측우기(測雨器)라 하니, 길이가 1척(尺) 5촌(寸)이고 직경(直徑)이 7촌입니다. 주척(周尺)을 사용하여 서운관(書雲觀)에 대(臺)를 만들어 측우기를 대 위에 두고 매번 비가 온 뒤에는 서운관의 관원이 직접 주척(周尺)으로 물의 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