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각사의 서리배(관아에 딸려 말단의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이들)와 각 군영의 장교와 군졸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원과 선생의 집에 들인다. 문 안에는 옻칠한 소반을 놓고 이를 받아두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하며, 지방의 관청에서도 이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1819년 김매순(金邁淳)이 한양(漢陽)의 세시기를 쓴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설날부터 정월 초사흗날까지는 승정원과 모든 관청이 쉬며, 시전(市廛) 곧 시장도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고 합니다. 이때는 서울 도성 안의 모든 남녀가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했다 하며, 이 사흘 동안은 정승, 판서와 같은 고위 관원들 집에서는 세함만 받아들이되 이를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