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왕후 3

세종의 뜻을 받들어 훈민정음을 널리 알린 세조

세종대왕이 아낀 아들, 수양대군 세종(조선 제4대 임금)에게는 소헌왕후를 포함해 총 6명의 부인이 있었다. 왕후와 후궁을 통해 낳은 자녀는 모두 18남 4녀였는데, 그중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진 자녀는 소헌왕후가 낳은 맏아들 문종(조선 제5대 임금)과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었다.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훗날의 세조로, 조선 제7대 임금이 된다. 그는 대군 시절부터 왕위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못했는데, 스스로 ‘왕이 될 만하다’고 느낄 만큼 재능이 특출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유교 경전과 역사서는 물론, 역법, 병서에도 두루 통달했고, 풍수 또한 전문가 수준으로 실로 당대의 어떤 문사에게도 뒤지지 않을 학문적 소양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또 문인 자질보다 무인 자질이 더 뛰..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 정의(貞懿)공주

정의공주의 생애 세종 때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특히 가족으로 세종을 도운 부인 소헌(昭憲)왕후와 딸 정의공주(1415년 ~ 1477)가 있다. 세종은 딸 2명과 아들 8명을 두었다. 맏딸 정소(貞昭) 공주와 맏아들 이향(李珦, 문종)에 이어 둘째 딸 정의 공주다. 세종은 그 밖에 아들 7이 더 있다. 정의공주는 세종 즉위 전에 출생하였다고 하나 다만 오빠 문종(文宗)과 동생 세조(世祖) 사이에 태어난 사실에 비추어 태종 15년(1415)~16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세종 10년(1428)에 정의공주에 봉해졌고, 안맹담(安孟聃)과 가례를 치렀다. 안맹담은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이다. 그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이후 안맹담은 계유정난에 협조하여 성록대부로 가..

《조선왕조실록》 속 약자들의 패자부활전,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 속 대결에서 패한 자는 왜곡되고, 묵살당하며, 잊혀간다. 지금이야 대권을 잡지 못하거나 정권창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임금이 되지 못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런 냉혹한 시대, 한 인간이 온 힘을 다해 투쟁에 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역사 속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길은 나뉘는 법,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묘사했고, 약자는 곧 ‘악한 자’로 폄하되어 갖은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