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8

도서관 속 옛글을 찾아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이 가득한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1관 4층. 이곳의 한쪽 구석에는 ‘고서실’이라고 쓰인 작은 문이 있다. 중요한 자료들이 보관된 고서실에 일반 학부생이 출입하는 것은 원칙상 금지되어 있어 정확히 어떤 자료들이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지만, 고서실 문 옆을 장식한 커다란 유리 간판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기록 하나를 보여 준다. 바로 1459년 간행된 한글 고서이자 보물 745-1호인 『월인석보』 권1~2다.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내 『월인석보』 권 1~2 안내 간판. 『월인석보』는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으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각각의 제목을 따 『월인석보』라 일컫는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

세종의 뜻을 받들어 훈민정음을 널리 알린 세조

세종대왕이 아낀 아들, 수양대군 세종(조선 제4대 임금)에게는 소헌왕후를 포함해 총 6명의 부인이 있었다. 왕후와 후궁을 통해 낳은 자녀는 모두 18남 4녀였는데, 그중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진 자녀는 소헌왕후가 낳은 맏아들 문종(조선 제5대 임금)과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었다.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훗날의 세조로, 조선 제7대 임금이 된다. 그는 대군 시절부터 왕위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못했는데, 스스로 ‘왕이 될 만하다’고 느낄 만큼 재능이 특출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유교 경전과 역사서는 물론, 역법, 병서에도 두루 통달했고, 풍수 또한 전문가 수준으로 실로 당대의 어떤 문사에게도 뒤지지 않을 학문적 소양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또 문인 자질보다 무인 자질이 더 뛰..

수양대군과 춤추는 학

수양대군과 춤추는 학 어느 날 안평대군 이용 · 임영대군 이구와 더불어 향금(鄕琴)을 타라고 명하였는데, 세조는 배우지 않았으나 안평대군 용이 능히 따라가지 못하니 세종과 문종이 크게 웃었다. (……) 세조가 또 일찍이 피리(笛)를 부니 자리에 있던 모든 종친들이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학(鶴)이 날아와 뜰 가운데에서 춤을 추니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의 나이가 바야흐로 어렸는데도 이를 보고 홀연히 일어나 학과 마주서서 춤을 추었다. - 『세조실록』 총서 세 번째 기사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1417∼1468년, 재위 1455∼1468년)를 후세 사람들은 곱게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으로 본다면 업적도 적지 않았지요. 특히 세조는 훈민정음이 자리를 잡는 데 ..

우리나라 첫 금서 《금오신화》와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우리나라 첫 금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시습은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법호인 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로서 외로운 방랑의 삶을 의미하고 또 다른 호인 청한자(淸寒子)는 맑고도 추운 사내, 벽산청은(碧山淸隱)은 푸른 산에 맑게 숨어 산다, 췌세옹(贅世翁)은 세상에 혹 덩어리일 뿐인 늙은이라는 뜻이어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시습상, 무량사 《금오신화》는 왜 금서가 되었을까요? 거기에 실린 5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남염부주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덕망 없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서는..

《조선왕조실록》 속 약자들의 패자부활전,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 속 대결에서 패한 자는 왜곡되고, 묵살당하며, 잊혀간다. 지금이야 대권을 잡지 못하거나 정권창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임금이 되지 못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런 냉혹한 시대, 한 인간이 온 힘을 다해 투쟁에 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역사 속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길은 나뉘는 법,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묘사했고, 약자는 곧 ‘악한 자’로 폄하되어 갖은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얼레빗 4584호) 살생부가 되어버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시고 / 즈믄해를 이대로 전하여 봄 직하지 않은가 / 삼년 뒤 정월 초하룻날 밤 치지정에서 다시 펼쳐 보고서 시를 짓는다.” 이는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다시 꺼내 보고 감탄하여 지은 시입니다. 그렇게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 소장 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인 1447년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신선들과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노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깬 뒤 너무나 생생한 장면을 잊을 수 없어 화가 안견에게 부탁해서 그린 그림이 바로 세로 38.7㎝, 가로 1..

(얼레빗 4206호) 조선전기의 동국지도, 조선후기의 동국지도

“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정척(鄭陟)ㆍ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양성지(梁誠之) 등이 《동국지도(東國地圖)》를 바쳤다. 이보다 앞서 정척과 양성지 등에게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에 모여서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상고하여 확정하게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