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3

(얼레빗 제4878호) 정조의 백성사랑이 꾸불텅하게 만든 화성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완성되었다. 임금이 화성 유수(華城留守) 조심태(趙心泰)에게 이르기를, "성을 쌓는 데에 든 비용이 거의 80만에 가까운데, 소중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구차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본래 생각이었다. 이 책을 펴내 모든 사람이 성의 공사에 관한 본말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는 《정조실록》 45권, 정조 20년(1796년) 11월 9일 기록으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완성되었다는 내용입니다. ▲ 보물 《화성성역의궤》, 조선 1801년 《화성성역의궤》는 조선시대 화성유수부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 ‘화성(華城)’을 쌓은 경위와 제도ㆍ의식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조 18년(1794) 1월부터 정조 20년(1796) 8월에 걸쳐 쌓은 화성성곽은 큰..

(얼레빗 제4757호) 실학자 유형원이 쓴 개혁교과서 《반계수록》

‘개혁’은 한자로 ‘改革’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개(改)’는 고친다는 뜻이고, ‘혁(革)’은 가죽을 나타냅니다. 고대에 가죽은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의 계급과 신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죽옷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계급이나 신분이 바뀐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뜻이고 지금은 ‘개혁’이라 하면 낡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을 말하지요. 지금으로부터 352년 전인 1670년 조선 중기의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완성하고 1770년 경상감영에서 펴낸 《반계수록(磻溪隨錄)》은 그야말로 개혁교과서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이 일어나고 삼정(三政) 곧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군정..

(얼레빗 4168호) 정조의 백성 사랑이 이룬 결정체 화성

수원 화성은 조선시대 수원의 도심 전체를 둘러싼 전체 길이 5.4km 가량의 성곽입니다. 화성은 정조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산(花山: 지금의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으로 옮겨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치고는 현릉원 능행을 위한 행궁을 지은 것이지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