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생활 8

우리말 탐구 - 징검다리를 건널 땐 먼저 밞아 보렴

황순원의 장편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는 “왜 좀 더 멀리서 밞아가지고 무사히 뛰어 건너지를 못했을까.”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의 ‘밞아’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들이 ‘밟아’의 오자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위 구절에서의 ‘밞아’는 ‘밟아’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기로 보기는 어렵다. ‘발을 들었다 놓으면서 어떤 대상 위에 대고 누르다.’ 혹은 ‘비유적으로 힘센 이가 힘 약한 이를 눌러 못살게 군다.’를 뜻하는 ‘밟다’는 위의 문장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문학 작품임을 고려하여 상징적으로 뜻을 이해해 보려 노력할 수도 있고, 앞뒤의 맥락을 미루어 파악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는 ‘밞아’를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품을 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 ‘밞아’는 잘못 표기한 것이..

예능 속 우리말 게임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던 이유

△티비엔(tvN) 예능방송 ‘지구오락실’의 한 장면 7월 국내의 한 케이블 예능 방송(지구오락실)에서 출연진들이 우리말만을 사용하는 게임을 즐겼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음식점에서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면 된다. 한 번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음식을 못 먹고 다른 식당으로 이동해야 한다. 게임이 시작되자 출연진들은 외국어를 쓰지 않으려고 진땀을 흘렸다. 이들의 말투는 마치 번역기 목소리를 흉내 낸 듯 어색했고 부자연스러웠다. 대체어를 찾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끝내 출연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오케이(OK)’, ‘사이즈(size)’ 등의 영어를 내뱉고는 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게임이 너무 어렵다고 고백했다. 방송을 보면..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어떻게 할 것인가? 훅 돌아보며 상대를 확인하는데, 그 사람이 그냥 간다. ‘괜찮은가 보다’라고 재빨리 판단하며 나도 그냥 간다. 장면을 하나 더 생각해 보자. 친구와 약속한 곳으로 가고 있는데, 길이 많이 막힌다. 나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 늦어버렸다. 저기쯤 나를 기다리는 친구가 보인다. 뭐라고 말을 할까? ‘많이 기다렸지? 추웠겠다…’라며 우선 친구를 달랜다. 마지막에는 음식값도 계산하며 늦은 값을 치렀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드라마 같은 장면 두 개를 봤다. 이렇게 미안할 일이 생겼을 때 한국인들은 보통 뭐라고 하는가?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이 생겼을 때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유치원에서부터 배운다. 그런데 누구나 다 알고 ..

우크라이나 수도는‘키이우’로 표기하세요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 이하 ‘국어원’)은 지난 3월 7일부터 나흘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협회장 서양원, 이하 ‘편협’)와 공동 운영하는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이하 ’외심위‘)’를 개최하여 우크라이나어 지명의 한글 표기안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3월 10일(목) 오후, 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에 공개했다. 국어원과 편협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우크라이나어 지명의 한글 표기에 대한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외심위를 신속히 개최하고 우크라이나어 지명 14개의 한글 표기를 확정하여 공개([붙임] 참고)한 것이다. 이번 외심위에서는 그간 관행적으로 써온 러시아어식 표기 ‘키예프’(우크라이나 수도)를 ‘키이우’로, ‘리비프’(우크라이나 서부 도시)를 ‘르비우’로 적을 수 있다는 ..

사전 두 배로 즐기기 - 우리 언어생활 속 국어사전의 역할

국립국어원에서 국어사전 운영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거의 매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누리소통망 등에서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을 검색해본다. 사람들이 어떨 때 ‘국어사전’이란 것에 관심을 갖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보통 단어의 표기나 뜻풀이가 궁금할 때 사전을 찾아본다. 이렇게 사전에서 직접 단어를 검색하는 것 말고,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어떨 때 ‘사전’을 언급하게 될까?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과 같은 말을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유형은, 사전 내용을 자신이 하려는 말의 근거로 삼는 경우이다. ‘사전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으니, 이러저러하게 판단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많다. 국어사전을 인용한 결과를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

‘에이에스엠아르(ASMR)’는 ‘감각소리’로

- 국립국어원 ‘새말모임’ 출범 기념 우리말 다듬기 국민 참여 행사 결과 발표 -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최근 방송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대상으로 국민 참여 공모를 진행한 결과, ‘에이에스엠아르(ASMR)’를 대체할 우리말로 ‘감각소리’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함께 공모를 진행한 ‘욜로(YOLO)’를 대체할 우리말은 ‘오늘살이’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대체할 우리말은 ’반짝패션‘이 선정되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9월에 국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좀 더 자연스럽고 수용도가 높은 우리말을 찾고,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새말모임’을 발족하여 시범 운영 중이다. 20~30대 젊은 세대 위주의 홍보‧출판 전문가, 정보‧통신 전문가, 아나운서,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