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8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

‘임금이 승하한 뒤, 첫째 아들인 왕세자가 즉위한다.’ 얼핏 보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명제는 실현되지 못한 적이 훨씬 많았다. 조선 역사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세자는 겨우 일곱 명에 불과했다.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만 적자이자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그나마 요절하지 않고 꽤 오랜 기간 정사를 제대로 펼친 임금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도 ‘가업 승계’와 ‘후계자 양성’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한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 봉건시대에 ‘왕세자 책봉’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자 출신 왕자들만 많거나, 서자 출신 왕자조차 거의 없거나, 적자 왕자는 있으나 군주가 지녀..

세자의 공간, 동궁 (1) - 동궁이란

세자의 공간, 동궁 조 재 모(경북대) 1. 동궁이란 왕세자의 공간을 보통 동궁東宮이라 부른다. 특별히 궁宮이라는 명칭을 쓴 것은 궁궐 내에서도 동궁이 별도의 구역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아래 『예기』의 글이 그 근거가 되었다. 禮記 內則 “由命士以上 父子皆異宮” 이는 왕명을 받은 사士 이상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집을 쓴다는 것으로, 동아시아 궁궐에서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었다. 즉, 동궁은 궁궐 안에 있던 밖에 있던 간에 아버지의 궁과는 별개로 인식되었다. 한편, 세자의 궁을 특별히 동궁이라 하는 것에는 아래와 같은 전거가 인용된다. 孔穎達(唐), “임금은 서궁에 있고 태자는 항상 동궁에 처한다.” 胡培翬(淸), “태자는 곧 장자이니 동궁에 거처하는데, 군주가 서궁에 있다는 것에 ..

세자의 교육 (5) - 예제를 중시하는 교육, 입학례

5. 예제를 중시하는 교육, 입학례 왕세자 교육에서는 예제 교육도 중요했다. 조선의 왕세자는 장차 국왕이 되어 국가전례를 주관해야 했으므로, 사전에 다양한 예제를 익혀 두어야 했다. 따라서 왕세자는 국왕이 참석하는 국가전례가 있으면 국왕을 수행하여 현장 학습을 실시했고, 중국의 사신이 오면 왕세자가 주인이 되어 손님을 접대하는 절차까지 있었다. 왕세자가 국가전례에 참석할 경우에는 세자시강원의 관리들도 왕세자 옆에 배석했는데, 왕세자가 복잡한 의식 절차를 잘 익히고 원만하게 처신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전례를 목격하는 것과는 별도로 왕세자가 직접 경험하는 통과의례도 있었다. 궁중에서 왕자가 성장하는 동안 많은 통과의례가 거행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을 거론하면 어린 왕자가 스승을 처음 ..

세자의 교육 (1) - 국왕을 규제하는 방법

세자의 교육 김 문 식(단국대) 1. 국왕을 규제하는 방법 국왕이라면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 살고 있지만, 조선의 국왕은 대통령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오늘날의 정부 기구는 입법, 사법, 행정 등 삼부(三府)로 나눠져 있고,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행정부의 수반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왕은 삼부를 총괄하는 최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제에 불과하지만 국왕의 임기는 일단 왕위에 오르면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평생토록 지속하는 종신직이었다. 국왕은 이처럼 막강한 존재였기에 제대로 된 국왕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국가의 운명은 극도로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실록에서 장차 ..

조선의 세자 - 세자의 대리청정

7. 세자의 대리청정 대리청정(代理聽政)은 국왕이 건강상의 이유로 통상적인 정사를 돌보기 어려울 때 차기 왕위계승자인 왕세자[또는 왕세손]가 국정을 대신하여 다스린 것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ʻ청정(聽政)ʼ으로 불리었으며, 때로는 ʻ대리(代理)ʼ로 약칭되기도 했다. 대리청정 시 왕세자 및 왕세손을 소조(小朝)라 하고, 국왕을 대조(大朝)라 했다. 이는 대체로 군권 및 인사 등은 국왕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으면서 대권을 행사하고 정사 실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왕세자에게 허락된데서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대리청정의 기원을 《춘관통고》에서는 정종(定宗)년간 왕세자[태종]의 군국기무(軍國機務) 장악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향후 정착되는 대리청정기에 여전히 국왕이 군권 및 인사권을 장악하는 현상과는 전혀 다..

조선 국왕의 상징물 - 국왕의 이름을 기록한 상징물(1), 어보

1) 어보 어보(御寶)는 국왕이 사용하는 도장을 말한다. 왕세자 시절에 받는 은인(銀印)과 국왕 시절에 받는 금보(金寶)가 있다. 국왕의 새로운 이름이 정해지면 이를 기록한 어보와 어책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국왕이 새로운 이름(존호, 묘호, 시호, 전호, 능호)을 받을 때마다 어보는 새롭게 만들어졌다. 국왕이 왕세자를 책봉할 때 교명(敎命), 죽책(竹冊)과 은인(銀印)을 내렸다. 왕세자의 은인에는 ‘왕세자인(王世子印)’이라 새겼다. 왕세자인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때는 대리청정을 할 때이다.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 왕세자의 명령서나 관리 임명장에 이 은인이 찍혔다. 조선 국왕이 중국 황제에게 책봉을 받을 때 받는 책봉인도 어보에 해당한다.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 새겨진 책봉인은 중요한..

조선 국왕의 상징물 - 국왕의 이름(1) 존호, 묘호

1. 국왕의 이름 조선 국왕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 국왕에게는 어릴 적 이름인 아명(兒名), 원래의 이름인 원명(原名), 성인식인 관례를 거행할 때 받는 자(字)와 별도의 이름인 호(號)가 있었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양반사대부도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국왕의 원명은 왕세자로 책봉할 때 정해졌다. 종묘와 사직에서 왕세자를 책봉한 사실을 알리려면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순종이 왕세자로 책봉될 때 신하들은 세 가지 후보로 척(坧), 전(㙉), 지(土+示)를 올렸고, 고종이 첫 번째 글자에 낙점하 였다. 자는 성인이 되면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이름 대신에 지어주는 이름으로 해당 인물의 덕을 나타낸다. 존호(尊號), 묘호(廟號), 시호(諡號), 전호(殿號), 능호(陵號)는 국왕과 왕비에..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속수례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속수례 이 때에 와서 세자가 의위(儀衛)를 갖추고 요속(僚屬)을 거느리고 성균관에 이르러, 유복(儒服)을 입고 대성전(大成殿)에 들어와서 문선왕(文宣王)과 네 분의 배향위(配享位)에 제사를 지내고, …… 박사에게 속수례(束脩禮)를 행하고, 세자가 당(堂)에 올라 소학제사(小學題辭)를 강(講)하였다. 돌아와 신궁에 나아가서 잔치에 배석하였는데, 임금이 학관(學官)과 학생에게 음식을 주도록 명하였다. 『세종실록』 3년(1421년) 12월 25일 기록입니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세자시강원 관원에게 수업을 받았습니다. 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던 기관으로, 영의정이 책임을 맡았지요. 그때 성균관에서 열린 왕세자의 입학식은 나라의 큰 행사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제자가 가르침을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