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본 7

(얼레빗 제4932호) 최현배 선생, 《중등조선말본》 처음 펴내

1934년 오늘(4월 5일)은 최현배 선생이 동광당서점을 통해서 《중등조선말본》 초판을 펴냈습니다. 《중등조선말본》은 본래 선생이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낸 책입니다. 당시 한반도 안에서는 물론이고 만주와 나라 밖에서도 널리 사용된 문법 교과서지요. 최현배 선생 개인으로는 이후 1937년에 펴낸 기념비적 책인 《우리말본》을 준비하는 가운데 나온 교과서라고 합니다. 《중등조선말본》은 ‘첫재 매[第一篇] 소리갈[音聲學], 둘재 매 씨갈[品詞論], 셋재 매 월갈[文章論]’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또 문법(文法)이란 한자말 대신 말본, 명사 대신 이름씨, 대명사 대신 대이름씨, 동사 대신 움즉씨, 형용사 대신 어떻씨, 부사(副詞) 대신 어찌씨,..

김두루한 배움이야기 5, ‘언어’가 아니라 ‘말’이다!

언어폭력의 언어는 무엇을 말할까?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 4%를 대상으로 한 지난해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피해자 10명 중 7명가량이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피해 응답률이 높았다. 가해 이유는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가 1위였다. 6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22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른 내용이다. 위 기사에서 나온 ‘언어폭력’에서 ‘언어’란 무엇일까? 말모이인 《표준국어대사전》, 《두산백과사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는 ‘언어’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①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는데 쓰는 음성ㆍ문자 따위의 수단 ②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관습적 체계.”(표준)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

한글 위인 열전 - 우리글과 역사를 사랑한 권덕규

“조선은 예부터 국문이 있었으니 신지비사(神誌秘詞)는 그것이 어떤가는 알지 못하나… 세종 25년에 정음청을 궁중에 두고… 예전부터 내려온 문자를 정리하고 연구하고 골라 자모 28자를 정하여… 국민에게 반포하니 이것이 즉 훈민정음(즉 언문이라 함.)이라. 세계 문자 가운데 가장 신식의 것으로 동양의 알파벳식 문자로 그 정교함이 문자의 역사상 특별히 뛰어난 것이다.” - 권덕규의 ≪조선유기≫ 중에서 암흑 속에서도 빛났던 자긍심 권덕규는 1913년 서울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모교와 중앙학교·중동학교에서 우리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 주시경의 뒤를 잇는 국어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21년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 창립에 참여하였다. 그 뒤 조선어학회의 역사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큰사전≫ 편찬에 참여..

한글 위인 열전 - 한글 '가로쓰기'를 실현한 최현배

주시경과의 운명 같은 만남 최현배는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으나 고향인 경남 울산의 일신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은 후, 1910년에 상경하여 관립한성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주시경은 일요일마다 보성중학교 내 국어 강습원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이때 최현배는 1910년 5월부터 3년간 주시경의 수업을 듣게 된다. 주시경으로부터 한글과 국문법을 배운 최현배는 ‘국어는 우리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주시경의 민족주의적인 언어관에 큰 영향을 받고, 평생 국어 연구와 국어 운동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한다. “나는 이 중등학교에 다니게 된 때부터 동향 선배 김 아무를 따라 박동 보성학교에 차린 주시경 스승님의 조선어 강습원에 일요일마다 빼지 않고 ‘조선어’를 배우..

(얼레빗 4450) 대한민국 어문정책의 큰 틀 만든 최현배 선생

“한 겨레의 문화 창조의 활동은, 그 말로써 들어가며 그 말로써 하여 가며, 그 말로써 남기나니: 이제 조선말은, 줄잡아도 반만년 동안 역사의 흐름에서, 조선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과의 축적의 끼침이다. 그러므로, 조선말의 말본을 닦아서 그 이치를 밝히며, 그 법칙을 드러내며, 그 온전한 체계를 세우는 것은, 다만 앞사람의 끼친 업적을 받아 이음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 계계승승(繼繼承承)할 뒷사람의 영원한 창조활동의 바른 길을 닦음이 되며,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함이 되는 것이다.” ▲ 대한민국 어문정책의 큰 틀을 만든 외솔 최현배 선생 위는 1894년 오늘(10월 19일) 태어난 외솔 최현배 선생이 펴낸 《우리말본》 머리말에서 있는 말입니다. 최현배 선생..

주시경의 유산

별이 지다 국문 연구, 말모이 편찬, 한글 강습 등으로 불철주야 장안을 누비던 주시경이 1914년 7월 27일 3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훗날 제자 김윤경은 주시경 선생은 1911년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사건의 여파로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망명을 결심하고, 방학 때에 고향 부모를 찾아뵈었으며, 서울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던 중에 ‘체증’으로 돌아가셨다고 썼다(김윤경, 「주시경 선생 전기」, 『한글』 126(1960)). 돌연한 스승의 죽음에 제자들은 통곡했다. 김두봉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며 슬퍼했고, 스승의 부탁으로 동래군 동명학교 하기강습회에서 수업을 하던 중 부음을 들은 최현배는 강습생들과 함께 대성통곡했다. 생전의 주시경은 상동청년학원을 비롯해 공옥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