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3

간도 용정촌의 유래가 된 물 퍼올리는 ‘용두레’

간도 용정촌의 유래가 된 물 퍼올리는 ‘용두레’ 옌볜延邊(연변) 출신 소설가 류원무의 책 『연변취담』에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가 살며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중국 지린성吉林省(길림성) 동부 간도(間島) 룽징춘龍井村(용정촌)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 조선인 마을이 생긴 때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이재민이 옮겨와 살기 시작한 1877년이라고 하지요. 그 뒤 1886년 봄, 정준이라고 하는 조선 젊은이가 옛 우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맑고 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우물이 깊어서 룡드레를 세우고 물을 길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룡드레촌’이 되었는데, 학식께나 있다는 사람들이 상의하여 룡드레의 첫 글자인 ‘룡(龍)’ 자에 우물 ‘정(井)’를 붙여 ‘용정촌’으로 지었다고 합니..

(얼레빗 4401호) 어려운 이들 물폭탄으로 고통받아

동아일보 1934년 8월 9일 치 기사 가운데는 “구조받어 연명중, 병마까지 엄습, 주먹밥도 끈허저 나물죽, 설상가상의 선산 재민”이라는 제목이 보입니다. 경북 선산에선 큰물(홍수) 탓에 이재민 3천여 명이 주먹밥으로 근근이 연명해오다가 그나마도 끊어지고, 보리죽과 나물죽으로 그날그날의 생명을 연명하는 가운데 돌림병까지 돌아 신음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물난리는 지금뿐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큰물이 나서 사람들이 죽고 많은 집이 무너지곤 했습니다. 특히 정조실록 13년(1789년) 7월 26일 기록에는 함경북도 명천에서 물난리로 물에 떠내려가거나 깔려 죽은 사람이 5백 46명이고, 떠내려갔거나 무너진 집이 5백 70채였다고 합니다. 또 증보문헌비고를 보면 1854년 7월 전라도에서 큰물이 나서 집 2..

(얼레빗 4400호) 오늘은 입추, 큰비가 계속되면 기청제를

오늘은 24절기 중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로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입추면 가을이 들어서는 때인데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불볕더위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우리 조상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요? 주역에서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은 조금씩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이지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는 것입니다. 또 여름에서 갑자기 가을로 넘어가면 사람이 감당할 수가 없기에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겠지요. "근일 비가 계속 내려 거의 10일이 되어 간다. 지난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