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정시의 5

조선의 천문과학 - 자동시보 천문시계 ‘보루각 자격루’

조선의 천문과학 윤 용 현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총괄과장 예로부터 하늘의 변화를 하늘의 뜻이거나 하늘의 명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옛 사람들은 하늘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그래서 해와 달 그리고 별을 관측하여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깨닫고 하늘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농경 국가로서 비와 바람 등 천기의 변화가 지대한 관심사 중의 하나여서 천문 관측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하늘의 변화는 왕실과 백성들의 평안과 직결되는 신의 뜻이라고 여겨 항상 주의 깊게 하늘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학사는 천문과학과 함께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동기시대부터 하늘을 관측해 다양한 기록을 남겨 왔으며 삼국 시대와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높은 수준의 천문과학을 발전시켰..

한글 위인 열전 - 세종대왕과 정의 공주

1443년 12월 30일, 세종대왕은 역사에 길이 빛날 걸작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종이 어떻게 한글을 만들었으며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단독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쓰여 있고,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의 일들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을 번역하고 해설서를 만드는 등의 작업에 참여한 것도 모두 훈민정음 창제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정말 혼자만의 힘으로 한글을 만든 것일까? 베일에 감춰진 한글 창제의 비밀과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다. 바로 죽산 안씨 일가의 족보인 ≪죽산안씨대동보≫이다.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 공주는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

조선의 천문과학 기념우표

우리의 전통 과학은 천문학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천문(天文)’이란 ‘하늘에 드리워진 무늬’로서 우주와 천체의 다양한 모습을 의미합니다. 우리 민족은 문헌 기록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하늘을 관측해 다양한 기록을 남겨 왔으며 삼국 시대와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4월 21일 제54회 과학의 날을 맞아 조선의 우수한 천문과학을 되돌아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조선의 천문과학”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농업 중심의 과학기술은 조선 개국 이후 천문학을 토대로 한 단계 발전하여 세종 때에 절정을 맞이했습니다. 고려부터 이어진 서운관은 조선 시대에도 천문·지리·기상 관측 등을 담당하였고, 세종 16년(1434)에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역법 ..

(얼레빗 4578호) 세종이 구조를 제안하여 만든 ‘일성정시의’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 밤낮으로 기상의 상태를 알기 위해 천문의 이동이나 천기의 변화를 관측하는 기기)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하였는데, 이를 완성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모두 네 벌인데, 하나는 궁궐 안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으로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셋은 발이 있어 바퀴자루[輪柄]를 받고 기둥을 세워 정극환(定極環, 별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을 받들게 하였다. 하나는 서운관(書雲觀)에 주어 점후(占候, 구름의 모양ㆍ빛ㆍ움직임 등을 보고 길흉을 보는 점)에 쓰게 하고, 둘은 함길ㆍ평안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눠주어 경비하는 일에 쓰게 하였다.” ▲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복원품, 53×164.5cm, 국립민속박물관 이는 《세종실록》 19년(1437년) ..

11월 2일 - 12지신이 현재 시각을 알려드립니다

일식은 달이 해의 일부나 전부를 가리는 현상이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일식을 하늘의 경고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치게 하려고 구식례(求食禮)를 행했다고 합니다. 세종도 구식례를 하려 했지만 중국의 기준에 맞춘 예보는 1각(一刻, 한 시간의 4분의 1, 즉 15분)이 빗나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