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 5

(얼레빗 제4948호) 「탕춘대성」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됐다

지난 4월 9일 문화재청은 수도 성곽인 한양도성, 대피성인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탕춘대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습니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고 있는 「탕춘대성」은 3개의 성이 유기적인 하나의 도성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운용될 수 있도록 쌓은 독창적인 방어성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도성 방어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41년(1715년) 축조를 시작하여 영조 30년(1754년)에 완성하였지요. ▲ 탕춘대성(원경), 문화재청 제공 「탕춘대성」은 평시에는 성안에 설치된 군량 보관창고인 평창(平倉)을 지키고, 전시에는 평창(平倉)에 비축했던 군량을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보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였다. 한양도성을 지키기 어려워지면 ..

국립중앙박물관, 영산(靈山) 모임-진천 영수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2024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충청북도 진천군 영수사(靈水寺) 소장 보물 (아래 영수사 괘불)을 소개하는“영산(靈山)의 모임-진천 영수사 괘불(24.5.1.~10.13.)”을 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괘불전은 사찰 소장 괘불의 문화적 값어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2006년부터 선보여 온 전시로 올해로 열아홉 번째를 맞이한다. 가장 오래된 괘불 가운데 하나, 보물 괘불(掛佛)은 죽은 자의 영혼이 부처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천도재(薦度齋)와 같은 불교의식에 쓰인 불화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17세기 이후 불교의식이 활발하게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1653년(효종 4)에 제작된 은 현전하는 괘불 117점 가운데 조성시기가 이른 괘불로 값어치가 ..

「고창 문수사 대웅전」,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고창 문수사 대웅전(高敞 文殊寺 大雄殿)」과 「의성 고운사 가운루(義城 孤雲寺 駕雲樓)」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고창 문수사 대웅전」은 전라도 지역 대표 문수도량인 문수사(文殊寺)의 주불전(主佛殿)으로, 보물로 지정된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봉안하는 건물이다. 「의성 고운사 가운루」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진입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계곡 위를 가로질러 건립된 절 누각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고창 문수사는 644년(백제 의자왕 4)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기록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문수사 창건기(文殊寺 創建記, 1758년)」에 따르면 임진왜란 뒤 1607년(선조 40)에 중창(重創)되었고..

「탕춘대성」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지정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수도성곽인 한양도성, 대피성인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탕춘대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 탕춘대성(원경) ▲ 탕춘대성(근경)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고 있는 「탕춘대성」은 3개의 성이 유기적인 하나의 도성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운용될 수 있도록 쌓은 독창적인 방어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도성 방어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41년(1715년) 축조를 시작하여 영조 30년(1754년)에 완성하였다.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범위는 한양도성 서북쪽의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홍지문(弘知門)을 지나 북한산의 향로봉 아래까지 이어지는 전체 길이 5,051m 구간이다. * 홍지문(弘知門) : 1715년 축조된 탕..

(얼레빗 제4879호) 임금의 명으로 펴낸 개혁교과서 《반계수록》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펴내되, 단지 3건만 인쇄하여 바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1건은 곧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보내어 판본(板本)을 새기게 하고, 다섯 군데 사고(史庫)에 간직할 것도 또한 남한산성에서 인쇄해 가지고 오게 하였다.” 이는 《영조실록》 113권, 영조 45년(1769년) 11월 11일 기록입니다. 《영조실록》에도 오르고 임금이 직접 펴내도록 명한 《반계수록》은 조선 중기의 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쓴 책입니다. ▲ 유형원(柳馨遠)이 쓴 《반계수록(磻溪隨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형원이 살았던 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나라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정(田政, 토지에 부과되던 조세)ㆍ군정(軍政, 병역 대신 옷감을 대신 받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