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사건 3

나라말이 사라진 날 - 정재환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를 잃으면서 우리말과 글도 함께 잃어 버린 시절에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학술단체로 등록하고, 자칫 친일파라는 누명을 쓸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도 오직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에 마음이 아파오면서, 현재 우리는 우리의 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기는 하는건지 생각해 보면 아니라고 하는 편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글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노력해야 할 방송에서조차도 틀린 용어나 정제되지 않은 외래어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기자라는 사람들도 발음을 틀리고 문장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쓰는 모습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해방이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주시경의 유산

별이 지다 국문 연구, 말모이 편찬, 한글 강습 등으로 불철주야 장안을 누비던 주시경이 1914년 7월 27일 3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훗날 제자 김윤경은 주시경 선생은 1911년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사건의 여파로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망명을 결심하고, 방학 때에 고향 부모를 찾아뵈었으며, 서울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던 중에 ‘체증’으로 돌아가셨다고 썼다(김윤경, 「주시경 선생 전기」, 『한글』 126(1960)). 돌연한 스승의 죽음에 제자들은 통곡했다. 김두봉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며 슬퍼했고, 스승의 부탁으로 동래군 동명학교 하기강습회에서 수업을 하던 중 부음을 들은 최현배는 강습생들과 함께 대성통곡했다. 생전의 주시경은 상동청년학원을 비롯해 공옥학..

9월 5일 -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사건을 아시나요

1921년 12월 3일 국어학과 국어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 선생의 문하생 임경재, 최두선, 이승규, 이규방, 권덕규, 장지영, 신명균을 포함한 10여 명이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조선어연구회’라는 한국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연구회는 1931년 1월 10일 총회에서 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