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법 3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9, 개화기 훈민정음 역사

저번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훈민정음은 반포 58년 뒤 연산군 때 (1504년) 지하로 쫓겨 들어가 20 여 년을 지내고서 중종조의 어문학자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한자 학습의 보조역할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훈몽자회는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해 만든 교재였는데 한자의 음과 훈을 언문으로 써 주었던 것이지요. 최세진은 언문을 모르는 사람은 배워서 쓰라고 범례를 만들어 훈민정음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여기서 기역, 니은 등 자모의 이름이 처음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디에서도 훈민정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었으므로 이 범례야말로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한 동안 언문 공부의 유일한 교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언문은 편지나 일기를 쓴다든지 혹은 언문 소설을 읽는다든지 하여 민간사회로 깊숙이 번..

천연두 퇴치만큼 국어 교육에 앞장선 지석영

치사율 30%였던 천연두를 몰아낸 종두법의 선구자 지석영, 그가 의사인 동시에 국어학자인 사실을 알고 있는가? 1879년 10월, 그는 천연두를 예방할 방법을 배우고자 꼬박 스무 날을 걸어 부산의 제생병원에 도착했고, 지석영의 간청에 감복한 일본인 원장은 그에게 종두법을 가르친다. 대신 일본인 원장은 지석영에게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우는 데 많이 사용하던 책인 《인어대방(隣語大方)》의 국문 오자를 바로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 일은 지석영이 우리말의 원리를 이해하고 우리말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기 쉬운 한글로 새로운 시대를 꿈꾸다 지석영은 부산 제생의원에서 2개월간 종두법을 배우고 두묘(痘苗)와 종두침 두 개를 얻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가 있는 충주에 들러 40여 명에게 우두를 ..

(얼레빗 4301호) 20일을 걸어가 종두법을 배워온 지석영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큰 어려움에 부닥쳐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아직 이에 대한 백신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백신이 없었던 조선시대 후기만 해도 두창(천연두는 일본에서 유래한 이름)은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여러 가지 돌림병(전염병) 가운데서도 감염률과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