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黃喜, 1363~1452)는 단연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종 시대에 18년 동안 정승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희는 태종(太宗)이 양녕대군을 폐위시키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을 세자로 지명할 때 반대해 태종의 분노를 사서 서인으로 폐해지고 유배에 처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세종은 황희를 등용하려 할 때 많은 중신이 반대하자 황희의 행동이 "충성스럽지 않다고 볼 수 없다"라며 이를 일축했습니다. ▲ , 조선, 비단, 가로 57cm × 세로 88.5cm, , 국립중앙박물관 그런 황희는 왕권이 강했던 시절 임금의 일방적인 독주에 제동을 거는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종이 중년 이후 새로운 제도를 많이 제정하자, 황희는 “조종(祖宗)의 예전 제도를 경솔히 변경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