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 4

(얼레빗 4711호) 조선에 처음 들어온 축음기, 귀신소리 난다

지금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카세트테이프나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듣는 것도 옛일이 되었고, 요즘은 컴퓨터로 즐기는 것은 물론 음악가들이 직접 연주하는 공연장도 많지요. 그러나 예전엔 음악 듣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판소리가 유행하는데 이때는 명창을 불러와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1860년대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통해서 축음기라는 것이 들어와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축음기(蓄音機)는 말 그대로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인데 이를 처음 본 조선 관리는 이 축음기를 “귀신소리 나는 기계”라고 했다고 합니다. ▲ 일제강점기 "방탕한 자의 사치품"이라 여겼던 축음기(인천근대박물관) 명창 박춘재는 우리나라에 축음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고종 황제 앞에서 축음기..

조선에 처음 들어온 축음기, 귀신소리 난다

조선에 처음 들어온 축음기, 귀신소리 난다 요즘 세상에 음악 듣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공연장도 많고 시디플레이어는 물론 컴퓨터로도 즐기지요. 심지어 슬기전화(스마트폰)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음악 듣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판소리가 유행하는데 이때는 명창을 불러다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1860년대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통해서 ‘축음기(蓄音機)’라는 것이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축음기는 말 그대로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인데 이를 처음 본 조선 관리는 ‘귀신소리 나는 기계’라고 했다지요. 명창 박춘재는 우리나라에 축음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고종 황제 앞에서 축음기에 소리를 녹음해 즉석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887년에는 미국의 빅터 레..

(얼레빗 4658호) 광복 뒤 우리 기술로 만든 첫 음반 ‘애국가’

축음기와 레코드가 소개된 것으로 알려진 18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은 우리 기술이나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의 마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약 20개 정도 음반회사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1933년 이후로는 콜럼비아ㆍ오케ㆍ빅타ㆍ포리돌ㆍ태평 등 5대 음반사가 음반시장을 장악했지요. 하지만 이런 음반사들은 일본 음반사들의 자회사였기에 광복과 함께 이름마저 사라졌습니다. 광복 이후 민족자본에 의한 음반산업이 등장할 기회가 되었는데 1947년 8월 5일 고려레코드가 처음으로 국산 음반을 제작하면서 국내 음반산업이 걸음마가 시작되었지요. 첫 음반은 광복에 맞춰 '애국가'가 그 문을 열었습니다. 그 소개를 보면 합창에 음악대학 합창단, 독창에 송진혁, 지휘에 김성태, 피아노 반주에 최..

(얼레빗 4568호) 조선에 처음 들어온 축음기, ‘귀신소리 난다’

지금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공연장도 많고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듣기도 하고, 더더구나 요즘은 USB 등을 써서 컴퓨터로 즐기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전엔 음악 듣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판소리가 유행하는데 이때는 명창을 불러와서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1860년대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통해서 축음기라는 것이 들어와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축음기(蓄音機)는 말 그대로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인데 이를 처음 본 조선 관리는 이 축음기를 “귀신소리 나는 기계”라고 했다 하지요. ▲ 일제강점기 "방탕한 자의 사치품"이라 여겼던 축음기(인천근대박물관) 명창 박춘재는 우리나라에 축음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고종 황제 앞에서 축음기에 소리를 녹음해 즉석에서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