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단체 일진회 3

(얼레빗 제5022호) 119년 전 친일단체 일진회가 발표한 선언서

“~ 외국에 공사를 파견하여 국가 대표로 삼는 것은 국가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것인데, 그 이름과 지위가 허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무릇 얼마인가, 차라리 우방 정부에 위임하여 그 힘에 의거하여 국권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 또한 폐하의 대권이 발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운데 줄임) 수백 명 사상자를 내면서도 기필코 적은 공이나마 세워 동맹국에게 신의를 표하려 했던 계책이었다.” ▲ 일진회가 1907년 일본 황태자의 조선 방문 때 남대문 앞에 세운 대형 홍예문(아치). '받들어 맞이한다.'라는 뜻의 '봉영(奉迎)'이라는 글씨와 함께 가운데에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사꾸라 무늬가 있다. 이는 119년 전인 1905년 내일(11월 6일) 친일 단체였던 일진회가 발표한 선언서입니다. 내용은 “일본의 지도를..

(얼레빗 4641호) 고종 밀사로 헤이그서 순국한 이준 열사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 오늘(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이준 열사가 순국했습니다. 이준 열사는 이상설, 이위종 선생과 함께 고종의 밀서를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가게 됩니다. 세분은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고 공식적인 한국대표로서 회의 참석을 요청했으나 한국은 이미 일본의 보호국이므로 한 나라를 대표하여 참석할 자격이 없다 하여 거부되었습니다. ▲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던 이준, 이위종, 이상설의 모습 이에 세 특사는 일제의 침략을 폭로ㆍ규탄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控告詞)를 작성하여 각국 대표에게 보내는 한편, 언론기관을 통하여 국제여론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러나 열강의 냉담한 반응으로 회의 참석의 길이..

(얼레빗 4635호) 고종에게 일본에 사죄하라 협박한 송병준

1907년 고종황제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호소한 직후인 그해 7월 6일 매국노 가운데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는 송병준은 고종에게 양위를 종용합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은 그 책임이 폐하에게 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친히 도쿄에 가서 일본의 천황에게 사죄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세가와 주둔군 사령관을 대한문 앞에 맞아 면박(面縛,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을 쳐들게 하여 사람에게 보임)의 예를 하십시오.”라고 협박했습니다. ▲ 사헌부 감찰시절의 송병준(출처 위키백과) 고종은 송병준에게 “경은 누구의 신하이냐”라고 책망했지만 이후 이완용과 송병준이 날마다 고종에게 독촉했고, 송병준이 만든 친일단체 일진회가 나서서 온 나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