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 박경민

튼씩이 2024. 3. 21. 22:12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강제 개항 당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정말 무력하고 무능했나?
청군 파병을 계기로 조선에 파병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은 그들 말대로 정말 우발적이었나?

조선의 개항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두 사건은 일본이 조선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지대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특히,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는 사건 직후에 벌어진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을 통해 일본은 조선 조정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결국, 조선이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는 점에서 개항과 경복궁 점령 두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맥점이자 분수령이라고 볼 수 있다.

1894년은 한국사와 동아시아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해다. 한국사에서는 김옥균 암살 사건,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큰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 사이에 경복궁 점령 사건처럼 찰나의 짧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도 있었다. 특히, 경복궁 점령 사건은 사건 전후로 벌어진 큰 역사적 사건에 묻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오랜 시간 경복궁 점령 사건이 묻힐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해당 사건을 왜곡 보도하고,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한 것을 학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책소개에서 -

 

 

당시의 조선이 얼마나 국제정세에 어두웠는지, 통치 체제와 정책 결정 과정은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반면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이 두 사건을 통해 어떻게 주변국에 영향력을 키워나가는지, 국가적 과제와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떻게 국력을 집중하고 대처하는지, 팽창성과 침략성을 특징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성향이 언제부터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알 수 있게 된다. - 4쪽 -

 

경복궁 점령 사건이 오랜 기간 이렇게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사유를 곰곰 돌이켜보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발표하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 사건의 성격에 관한 입장, 즉 총격전을 거쳐 조선군을 쫓아내고 경복궁을 점령한 것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과 이를 학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온 것이 더 큰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 110쪽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시까지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국제법을 잘 지켰다”라는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당시 국제적 눈초리를 의식한 일본 정부의 의도적 사건 조작과 각색을 거친 허상이며, 일본인의 국뽕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은 일본 정부의 한일 근대사 역사 왜곡의 시발점이다.

(중략)

조선 파병 후 내정개혁 및 속방론 공세를 통하여 경복궁을 점령해 조선 조정을 확실한 자기 편으로 만들어 놓고 나서 조선 정부의 청군 축출의뢰를 명분 삼아 청일전쟁을 시작한 일본 지도부의 치밀한 사전 기획 및 종합적 수행 역량에 비해 자주적 개혁의 의지와 역량 부족, 국제 정세에 어두워 결정적 패착인 청군 파병 요청과 이를 뒤엎는 철군 요청 등으로 사태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조선 지배층의 무모하고 한심한 대처 역량이 대비되는 안타까운 역사적 지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 294∼295쪽 -

 

 

이런 류의 책들은 정말 읽고 싶지 않아 그 동안 멀리해 왔었는데, 그래도 모르는 것 보다는 알아야 비판도 하고, 욕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읽었는데 책을 보는 내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는게 쉽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을 키워 상황을 해쳐나가기 보다는 남의 힘을 등에 업고 쉽게 해결하고자 했던 모습이 과거 삼국시대 때의 신라와 닮았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억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