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전 오늘(9월 14일)은 박재혁(朴載赫) 의사가 부산경찰서장을 처단한 날입니다. 박 의사는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1920년 8월 상하이에서 김원봉 단장이 이끈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의열단은 암살 대상으로 조선총독과 고관, 군 장성, 친일파 거두 등 소위 7가살(七可殺)을 정하고, 파괴할 곳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등을 정해 철저하게 응징하자고 결의하였으며 이를 행동에 옮긴 단체입니다. 이에 따른 박 의사는 같은 해 9월 13일 부산경찰서 파괴의 임무를 띠고 짐 속에 폭탄을 숨겨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습니다.
박 의사는 상하이를 떠나기 전, 부산경찰서장이 고서수집가라는 사실을 알아내, 고서상(古書商)으로 가장했으며, 그 고서 더미 속에 폭탄을 감추었지요. 박 의사는 14일 부산경찰서에 가서 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에게 고서를 보여준다고 속인 다음 폭탄과 전단을 꺼내어 전단을 서장 앞에 뿌리면서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은 다 알고 왔다!'라고 말하면서, 폭탄을 서장 앞에 던졌습니다.
▲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공원에 있는 '박재상 의사 동상'(위키백과 제공)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너무 가까워 박 의사도 상처를 입고, 경찰서장에게도 상처만 입힌 채 일경에게 붙잡혔지요. 이후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갇혔는데, 고문과 폭탄 파편에 의한 상처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단식을 감행해 그 후유증으로 1921년 5월 27일 옥사했습니다. 물론 중상을 입은 경찰서장 하시모토도 그 뒤 죽었지요. 박재혁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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