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30년 전 신세대들은 다들 ‘워크맨’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워크맨은 1979년 일본 회사 소니가 만든 세계 최초의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인데, 덕분에 사람들은 집 바깥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뒤 등장한 ‘아이와’, ‘파나소닉’ 등 또 다른 일본제품들이 가세해 소형 카세트 시장을 장악하던 그때,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이 등장한다. 바로 삼성의 ‘마이마이’로, 가격이 싼 데다 국산품 애용 정신이 남아있던 터라 폭발적 인기를 모으긴 했지만, 냉정히 판단할 때 디자인이나 음질은 일본 것들과 비교가 안됐다. 혁신적이고 늘 남보다 앞서가는 소니와 소니의 뒤를 쫓기 바쁜 삼성, 그때만 해도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불과 3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반대가 됐다. 삼성이 시가총액과 브랜드가치에서 소니를 제친 건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2016년 4분기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은 16.5%의 점유율로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1위를 했다. 스마트폰만 따진다면 애플(17.9%)에 이어 2위(17.8%)지만, 점유율 차이는 0.1%포인트에 불과하다. 영화 <오션스 13>에서 카지노업계의 대부 알 파치노가 가장 갖고 싶어 한 게 삼성 휴대폰이었으니 말 다했다. 소니 치하에서 살았던 내 또래들과 달리 지금 젊은이들은 삼성 덕분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 것 같다.
삼성이 잘나가는 건 물론 뛰어난 기업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잘 만들고 AS까지 좋으니, 웬만하면 삼성 제품을 선택하게 되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집만 해도 휴대전화, 컴퓨터, 에어컨, 냉장고 등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 중 삼성의 비율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게 모조리 삼성만의 힘일까? 2007년 애플이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을 출시했지만, 그로부터 한동안 국내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살 수 없었다. 정부의 훼방도 있었을 테고, 휴대폰을 독점하던 재벌기업들이 담합한 것도 이유가 됐다.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SK 측에 아이폰 출시를 유보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훗날 드러났다. 국내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살 수 있게 된 건 삼성에서 ‘옴니아’를 출시한 후였다. 아내가 옴니아를 써서 아는 사실이지만, 옴니아는 엄밀한 의미로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기종이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이 옴니아를 사준 덕분에 아이폰은 한국 시장을 정복하지 못했고, 삼성은 결국 ‘갤럭시’라는 최고 히트상품을 만들 수 있었다. 삼성의 성장 뒤엔 이렇게 애국심으로 삼성 물건을 사준 소비자들이 있었다.
“이 부회장이 3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어떤 부정한 청탁도 하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을 통해 경영 문제를 해결하려 생각하거나 시도하지 않았다.”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특검이 제기한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 재단의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정유라에게 수십억원짜리 말을 사주는 등 각종 지원을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삼성이 최씨 모녀와 200억원대 후원계약을 체결한 건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한 직후였다. 비슷한 시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1388억원의 손해를 보면서도 합병안에 찬성하는 해괴한 행태를 보이는데, 특검의 발표에 따르면 이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단다. 두 기업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마지막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측의 숙원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삼성 측에서 최순실과 정유라를 지원해 줬다는 특검 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은 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뇌물죄가 인정되면 최소한 10년간 감옥에 갇혀야 하는 등 그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리라. 최고의 변호사를 쓴 데다 뇌물을 받은 쪽인 박근혜와 최순실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니, 잘만 하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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