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서 왔어요. 김제동씨 보려고요.”
한 여성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 촬영장인 경기도 평택의 예술회관에 모인 수백명의 사람들은 모두 김제동을 보기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경기도 포천, 전남 영광, 심지어 강원도 평창에서 온 이도 있었다. 한 여성은 자신이 방청권을 얻기까지 6번이나 실패했다면서 이번에라도 방청권을 얻은 것에 감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채워지는 시대에서, ‘톡투유’는 관객과 호흡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버지, 투석 꼭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딸,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 임신한 몸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 너무 힘들었다며 임산부 배려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인, 참석자들은 물론이고 그 사연을 듣는 사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난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방송을 많이 해본 연예인들과 달리 일반인의 말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연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을 조리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제동은 이들이 한 말의 핵심을 자기 식대로 정리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십분이 넘게 횡설수설한 남성에게 “그러니까 3D프린터 홍보하러 오신 거군요!”라고 할 때, 폭소가 터진다. 참석자의 아픔에 공감해 주면서 유쾌한 해법을 제시해줄 때도 마찬가지다. 4시간이 넘는 긴 촬영시간 동안 참석자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건 시종일관 이런 웃음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침울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즐거운 축제로 만들어버리는 것, 이런 면에서 김제동은 독보적인 존재다. 다른 방송인의 톡투유를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듯 능력 있는 방송인인 김제동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시청자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미운우리새끼>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김제동은 중도하차했다. 새로운 프로에서 그를 써주는 일도 드물었다. 워낙 TV를 좋아하는 박 전 대통령이 김제동의 TV 출연을 싫어했기 때문으로 추측됐다. 물론 제작진은 정권의 외압을 부인했지만, 그 말을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연예인이 정치적 사안에 침묵하는 동안 김제동은 일이 있을 때마다 광장에 나갔으니까.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세월호에 대해서도 김제동은 침묵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서슬이 시퍼렇던 세월호 2주기 때 김제동이 한 말은 그 자리에 있던, 그리고 인터넷으로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누가 물었습니다. 나라 지키다 죽은 것도 아닌데 왜들 그러시냐고. 제가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국가다, 이 ××××아!” 외압에 비교적 초연했던 JTBC에서 그를 쓰지 않았더라면, “김제동 보는 게 소원”이라던 82살 여인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테고, 우리는 시종일관 막장드라마와 연예인들의 만담만 봐야 했을 것이다.
사회가 스타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평상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쌓은 지명도를 이용해 좋은 일을 한다면 그 파급력이 크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가장 매력적인 유명인으로 꼽히는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는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단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현지를 여러 차례 다녀오기도 했고, 수단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기 위해 수단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국내정치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지 않아, 지난 대선 때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위해 거액의 모금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루니가 배우로서 활동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언론을 적으로 돌리며 욕을 퍼붓는 트럼프라 해도,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이들의 밥줄을 끊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게 본다면 블랙리스트를 만든 박근혜는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선 드문, 골수 반민주주의자다. 박근혜가 지금 구치소에 있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다.
차기 정권에선 어떨까. 소위 진보 진영이 집권할 확률이 높아 보이니, 최소한 김제동의 어머니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음 정권에서 박근혜 같은 대통령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시청자들의 권리 찾기다. 김제동이 정권의 탄압을 받는 동안 우린 거기에 대해 침묵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침묵이 계속된다면 정의를 외쳤다는 이유로 괜찮은 연예인이 TV에서 사라지는 일이 계속 생겨날 테고, 세월호처럼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앞장서줄 사람도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블랙리스트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그리고 그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김제동씨,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앞으로는 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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