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국민에 바란다

튼씩이 2017. 5. 19. 12:15

새해가 밝을 때마다 신년계획을 세우던 때가 있었다. 올해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건이 되면 그것도 해야지 하며, 이대로 간다면 내 자신이 정말 멋진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석 달쯤 지나고 나면 연초의 기대는 어느덧 사라지고, 예년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되다 보니 해가 바뀌어도 더 이상 들뜨지 않게 되고, 새해라고 해서 특별히 계획을 세우는 일도 없어졌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뀐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2016년이나 2017년이나 똑같은 존재인데, 뭔가가 크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된다.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해가 바뀌는 것은 마음을 달리 먹는 좋은 계기니까.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젠 좀 달라지려나?’ 하고 기대를 하던 때가 있었다. 새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줄 것이고, 북한도 잘 타일러서 다른 마음 안 먹게 하고, 내 살림살이를 낫게 해줄 것이라는 식의 기대 말이다. 하지만 임기 1년만 지나고 나면 이런 기대는 어느덧 사라지고, “남은 임기를 어떻게 견뎌야 하나?” 하는 한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신기한 일은 다음이다. 이런 일이 거의 매번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 때마다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새해는 매년 오지만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온다. 대통령 직선제는 1987년부터지만 그 이전부터 직선제가 실시됐다고 가정했을 때 나이가 50세라고 하면 대통령이 바뀌는 경험을 한 건 불과 10번이며, 투표를 한 걸로 따지면 7번에 불과하다. 둘째,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늘 이기는 건 아니다. 내가 뽑은 후보가 당선됐다면, 그에게 더 기대를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셋째, 해가 바뀐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지만,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다른 사람이다. 게다가 지난 대통령이 워낙 대단한 분이었으니, 매우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위에서 ‘네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굳은 의지를 갖고 노력하라’고 말했다. 그럼 새 대통령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길 원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지금까지 우리는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대통령을 안 찍은 이들이 ‘뭐 한 가지 걸리기만 해봐라’라는 마음으로 대통령을 째려봤다면,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지키자’며 반대자들을 종북으로 몰았다. 이런 일이 이번 정권에서도 반복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이번 대통령도 틀렸어’라며 임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지 모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대통령은 우리가 부여한 권력을 잠시 행사하는 사람일 뿐이며, 그 역시 우리처럼 불완전한 인간이란 점이다. 이렇게 막중한 직책은 처음 맡아본, 의욕은 넘칠지언정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분, 그게 바로 새 대통령이다. 그러니 ‘대통령에게 바란다’며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제시하고 모른 체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그 일을 하도록 어르고 졸라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2008년에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반값 대통령’을 공약했다. 그런데 이건 선거 때 표를 얻으려고 한 말이었을 뿐, 그가 진짜 이 공약을 지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대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대통령을 향해 공약을 지키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존 등록금이 반값이 된 건 아니었지만, 등록금이 더 이상 인상되지 않게 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에 놀란 교육부는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에 신입생 모집인원을 줄이는 벌칙을 부과함으로써 오히려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만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등록금은 제자리걸음인데, 학생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등록금은 오히려 2배가 됐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이번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거리로 나와 외치자. 국민과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하지만 대통령에게 국민의 뜻을 전하는 방법이 꼭 시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시때때로 있는 선거는 민의를 표출할 좋은 기회건만, 우리는 지금껏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두 달 후 열린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했다면,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그토록 훼방 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뒤 있었던 두 번의 재·보선에서 집권여당이 압승하지 않았다면, 박 정권의 후반기가 그토록 오만할 수는 없었으리라. 당장 2018년에 지방선거가 있고, 2020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이것 말고도 각종 재·보선 등이 줄줄이 이어질 테니, 정권을 심판할 기회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모든 걸 다 대통령 탓으로 돌리지 말자는 말씀을 드린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당장의 내 삶이 나아지진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날 벼르고 있고, 월급은 별로 오르지 않고, 내야 될 세금은 해마다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에게 이 책임을 전가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런 식의 불만 제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대통령이 하는 일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그게 마음에 안 들면 그때 욕하자.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