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2010년에 보낸 우리말 편지입니다.
[고랑과 두둑]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눈이 내리네요.
저는 요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회사일을 혼자 다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렇게 한다고 우리나라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저는 왜 이렇게 만날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설쇠러 올라오신 어머니의 첫 말씀이 "왜 이리 핼쑥해졌냐?"였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고랑도 이랑 될 날이 있겠죠?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데, 제 삶에도 그런 날이 있겠죠? ^^*
곧 설입니다. 고향을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농사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에 바로 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잘 빠지고, 식물 뿌리가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서 두둑하게 쌓는데,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좀 파인 곳이 있게 됩니다. 그런 일을 간다고 합니다. 논을 갈다, 밭을 갈다할 때의 갈다가 그 뜻입니다.
고랑은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으로 이 고랑이 바뀌어 '골'이 되었습니다. 그 골이 산에 있으면 산골이 되는 것이죠. 산골짜기의 그 산골... ^^*
두둑은 논이나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 만든 곳입니다.
그리고 이랑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두렁은 좀 다릅니다. 고랑이나 두둑, 그리고 이랑은 논이나 밭 안에 있지만, 두렁은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로 작게 쌓은 둑이나 언덕을 가리킵니다. 논두렁, 밭두렁할 때 그 두렁인데, 이게 논이나 밭 안에 있으면 이상하겠죠? ^^*
그 두렁은 곡식을 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님은 그 땅마저 아까워 그 두렁에도 콩이나 팥, 옥수수 따위를 심었습니다. 그게 바로 '두렁콩'입니다.
설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고향 생각나는 낱말 하나 더 소개해 드릴게요. 바로 '거웃'이라는 낱말입니다. 거웃은 한 방향으로 한 번, 죽 쟁기질하여 젖힌 흙 한 줄을 뜻합니다. 흔히, 양방향으로 한 번씩 쟁기질하여 두 번 모으거나 양방향으로 두 번씩 쟁기질하여 네 번 모아서 한 두둑을 짓죠.
아침부터 눈이 내리네요. 이러다 고향 가는길 힘들어지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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