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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변호사 - 존 그리샴

튼씩이 2018. 9. 10. 14:05




서배스천 러드는 꽤 이름 난 거리의 변호사이지만, 좋은 의미로는 아니다. 그는 파산 소송, 부동산 거래 확정, 유언, 소유권 증명, 계약, 이혼, 입양 사건은 맡지 않는다. 전에 살던 1층의 복층 아파트와 옛 사무실이 폭탄을 맞은 이후 번듯한 사무실도 없다. 인터넷과 바, 작은 냉장고와 고급 가죽 의자, 비밀 총기 보관함이 내장된 특수 방탄 밴이 현재 그의 사무실이다. 아예 움직이는 표적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난’ 변호사 서배스천 러드는 누구나 ‘꺼리는’ 소송을 전담한다. 마약 중독자, 악마를 숭배하여 여자아이 두 명을 죽였다는 문신을 한 아이, 사악한 연쇄 살인범 등. 서배스천은 왜 이런 사람들을 변호하는가? 이타적이라거나 희생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부조리한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용납할 만큼 빳빳한 심장을 가진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재선을 꿈꾸며 표 얻는 데만 혈안이 된 시장, 목적을 위해서는 납치, 유괴도 불사하는 경찰 간부,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선량한 시민을 총살하고도 법을 방패 삼아 형사 소송 면제권을 주장하는 주 정부와 경찰 조직, 개인의 이기심을 채우다 못해 폭파와 살인, 탈옥을 감행하는 희대의 범죄자, 위선적인 변호사를 추종하며 서배스천 러드를 조롱하는 시민들……. 이토록 ‘막장’에 치닫는 상황에서 변호사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아니 마지막 선택은 똑같이 ‘막장’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거리의 변호사는 ‘불량 변호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서배스천 러드의 적수는 ‘정의 수호’의 가면을 쓰고 ‘권력 수호’를 일삼는 사법 제도다. 그는 주 정부, 검사, 경찰 등 관료 체제와 권력에 맞서 거리의 사람들을 변호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어째서 형사 변호인이 됐는지 아연해한다.

“나는 거의 매달, 진실도, 진실이 자기편이 아니라는 점도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 부정행위를 하고, 의사 진행을 방해하고, 범죄를 은폐하고, 윤리를 무시하고, 유죄판결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독선적인 검사들을 상대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인간들, 그런 종자들을 잘 안다. 자기가 곧 법이요, 따라서 법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 법률가 나부랭이 말이다.” - 본문 25쪽

러드가 변호하는 형사 피고인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범죄자다. 마약 중독에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린 십 대 아이, 교도소 철창 안에서도 맘껏 핸드폰을 사용하며 사업을 운영하던 중에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를 살해한 무법자 링크, 이종 격투기 경기에서 판정패하자 정신줄을 놓고 심판을 두들겨 패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도유망한 격투기 선수 타데오, 마약 밀매범을 잡겠다며 새벽 3시 정각에 기습한 여덟 명의 경찰 특공대를 집에 쳐들어온 범죄자로 오인하여 발포하는 바람에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힌 더그 렌프로……. 여기에 납치당한 딸아이를, 아니 그 시체를 찾아 내부 범죄까지 마다 않는 경찰 부국장 켐프까지.

다섯 개의 개별적인 사건은 결국 하나의 대상을 향해 동일한 문제의식을 던지며 한 가지 씁쓸한 의문을 남긴다. 정의를 수호하는 법과 도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은 단지 의회가 법의 집행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일 뿐인가? 범죄자도 살인자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만고의 진리는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걸까? 법, 도덕, 원칙, 변호사의 묵비의무와 인간의 양심……. 도덕적 기준이 흐려지고 사법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누가 악당이고 누가 악당이 아닌지 종잡을 수 없다.

전화번호부에조차 등록되지 않은 거리의 변호사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뉴스에 등장할 수 있는 건, 그가 검증된 범죄자들을 ‘대놓고’ 변호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백한 의뢰인을 구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동원해 변호하는 것을 “단 하나의 명예로운 방법”이라고 여기며 당당히 맞선다. 서배스천 러드는 법과 체제의 굴레 속에서 ‘낙인찍힌 범죄자’가 무모한 비난의 화살을 맞으며 재단되는 현실에 대항한다. 그것은 서배스천 러드의 담담한 혼잣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외로운 총잡이, 체제와 싸우고 불의를 증오하는 불량배다.” - 본문 179쪽

거짓말쟁이들을 증오하는 그는 때로 ‘진짜 살인마’를 잡기 위해 증거를 얻고자 폭력도 불사한다. 여덟 명의 증언 녹취를 하는 데 하루 종일 매달리고, 배심원의 주목을 끌기 위해 짐짓 연기하고, 법정 모독죄로 하룻밤을 구치소에서 보내고, 검사와 판사를 협박한다. 유죄가 분명한데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피고인을 구하기 위해 은밀한 형량 거래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형량 거래를 통해 성 노예 인신매매단에 끌려간 여성들을 숱하게 구해내는 아이러니라니. 언뜻 비정상적이고 부당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변호는 실제로는 전혀 부당하지 않다. 그는 단지 부당한 법과 체제에 부당한 방법으로 맞서는 것일 뿐이다. 단, 그가 늘 전투적인 태세만 취하는 것은 아니다.

각별히 아끼는 이종 격투기 선수 타데오 자파타의 우발적 살인을 변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리, 그의 유일한 직원이자 경호원이며 조수이고 막역한 친구인 파트너를 향한 우정, 아들 스타처를 향한 애틋한 부정과 사랑은 이 반항적인 불량 변호사 서배스천 러드의 온정적인 인간미를 보여 준다. 아들을 두고 전처와 벌이는 면접 교섭권 싸움에서도 그는 좋은 아버지를 자처하지 않으나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로 남고 싶어 한다. 변호사로서, 아버지로서, 한 남자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의 러드의 삶은 처절해 보일 때도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다채로운 인물을 작품 전반에 골고루 배치하여 부조리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낯익은 현실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생동감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시원하고 통렬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남겨줄 것이다.

판사가 망치를 두드리면 본 게임이 시작된다. 이 게임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시점 이후로는 모든 것이 승리를 위한 치열한 몸짓이다.

나 같은 변호사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인간쓰레기를 변호할 수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
나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라고 재빨리 대답하고 자리를 뜬다. 우리는 정말 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정의의 실현, 그것도 신속한 실현이다. 이때 정의란, 그때그때 우리가 정의로 여기는 것이다. - 본문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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