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서민(단국대 의대교수)이야기

애국보수 클래스

튼씩이 2016. 2. 29. 16:44

“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사람들, 특히 애국보수세력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판결이 자기 믿음과 다르게 나온다 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이 대표적이다. 주신씨는 허리디스크로 4급 판정을 받았는데, 그 MRI가 가짜라는 게 그들의 주장. 논란이 확산되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검증을 받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애국보수의 클래스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주신씨가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박 시장의 아버지-박 시장-주신씨 이렇게 3대가 병역면제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일까? 박 시장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살았고, 박 시장은 부선망독자라고,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독자라 8개월 방위로 병역을 해결했다. 문제의 주신씨는 신검을 받은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는데, 공익요원을 보고 면제라고 하는 사람은 애국보수세력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남는 건 시간, 3대가 면제라고 인터넷에 도배를 어찌나 해대는지 그게 진짜인 줄 아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정인을 비판하기 위해 거짓말을 동원하는 건, 사실을 가지고 깔 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주신씨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분은 부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 근무하는 의사 양승오씨다. 그는 애국보수세력으로부터 “영상의학 최고의 전문가”로 여겨지고, 이건 ‘동남권’이란 이름 때문에 빚어진 듯한데, 심지어 “아시아 최고의 명의”라고 칭하는 분들도 있다.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논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수도권에 사는 환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가 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일까? EBS <명의> 팀은 왜 그분을 놔둔 채 세브란스병원의 정태섭 교수를 촬영한 것일까? 아무래도 그들에게 명의란 좌파를 까는 의사인 듯하다.

 

셋째, 2월17일 서울중앙지법은 양씨의 주장이 허위라면서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들은 판사를 욕한다. 판사가 좌파이며, 서울시장의 권력에 매수당했다고 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의학 관련 문제에 대해 당대 최고 권위 전문의와 판사 중 누가 더 잘 알고 있을까요?” 야당 정치인인 박 시장의 권력이 집권당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그들의 망상도 놀랍지만, 허위사실 유포에 관한 재판을 ‘의학 관련 문제’라고 단정짓는 창의성은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게 만든다. 그런 논리라면 내가 “애국보수들은 뇌에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고 떠들어대도 판사는 판결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기생충에 대해선 내가 판사들보다 훨씬 잘 아니까.

 

넷째, 창의성의 결정체는 주신씨의 공개검증이었다. 2012년 주신씨는 병원 관계자와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MRI를 다시 찍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은 즉시 사과를 했지만, 애국보수세력은 물러서지 않았다. MRI가 바꿔치기됐다는 것. 그 옆방에서 다른 사람이 MRI를 찍고 그 사진이 주신씨의 것으로 둔갑했다는데,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신기한 점은 그들이 여전히 주신씨의 공개신검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의사들이 보고 있는데도 MRI 바꿔치기가 가능하다면, 열번을 찍든 백번을 찍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국에 있다는 주신씨를 소환하려는 진짜 이유는 그냥 주신씨가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좋으면 니들이 가는 방법도 있다.

다섯째, 그들은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공개신검으로 모든 의혹을 해소했다면서 박 시장을 비난한다. 이건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이 후보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 다 체중미달로 병역이 면제됐다. 특히 첫째는 179㎝에 45㎏이라는 드문 체형이어서 의혹을 한 몸에 받았는데, 대선 직전 서울대병원에 나타난 이는 첫째가 아니라 둘째 아들이었고, 그나마도 키만 측정하고 몸무게는 재지 않았다. 이 후보가 두 번이나 대선에 떨어진 건 이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정도가 애국보수에게 ‘의혹 해소’라면, 공개검증에 응한 주신씨는 ‘의혹 완전말끔대박정리’가 돼야 마땅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애국보수세력은 그 투철한 애국심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있다. 물론 달리 할 일이 없어 그러는 건 알지만, 안타깝다. 애국보수라는 좋은 단어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박 시장 아들은 놔주고 다른 곳에 관심을 쏟으시라. 국가부채라든지, 김무성 의원 본인의 병역 의혹, 물고기 떼죽음 등등 애국보수의 관심이 필요한 일들은 도처에 있다. 애국보수의 각성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