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는 조금만 길면 잘 들지도 않는 바리캉으로 쥐어뜯듯(정말 눈물이 쏙 빠졌었다)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 놓은 선생들이 싫어서 아예 뭉구리(바싹 깍은 머리)로 박박 밀고 다녔으니 말 할 것도 없지만, 초등학교 때도 이발을 하러 가면 나도, 이발사 아저씨도 레퍼토리가 상고머리와 스포츠형, 두 가지밖에 없었다.
상고머리는 뒷머리와 옆머리를 치올려 깎고, 앞머리는 몽실몽실하게 두고, 정수리를 평평하게 깍은 머리(인문계나 공고, 농고생들도 어쩔 수 없이 상고머리를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스포츠형은 앞머리를 짧게 남겨 두고 나머지는 거의 박박 깎아 버리는 것인데, 그렇게 깎아서 함함하지 못하고 빳빳이 일어선 머리를 솔잎대강이라고 하는 것이다. 긴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는 쑥대머리나 쑥대강이라고 하는데, 대강이는 머리를 가리키는 속어다.
“찰랑찰랑해요!” 샴푸 광고에 나온 모델이 반짝이는 긴 머리를 흔들면서 하는 말이다. ‘찰랑찰랑’은 ‘작은 그릇들에 물이 모두 가득가득 괴어 있는 모양’이므로, 큰 그릇들에 물이 그득그득 괴어 있으면 ‘칠렁칠렁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찰랑찰랑한 머리는 어떤 머리인가. 치렁치렁한 머리를 생각하면 된다. ‘치렁치렁’의 작은말이 ‘차랑차랑’이다. “차랑차랑해요!”라고 해야 할 것을, “차랑차랑해요!” 하면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를 못할까 봐 “찰랑찰랑해요!” 하고 만 것이다.
차랑차랑한 머리는 머릿결이 고운 머리인데, 머리를 빗을 때, 빗기는 머리털의 결을 담이라고 한다. 잘 손질해 아름답게 가꾼 머리는 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담이 좋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절박머리 또는 처절박머리라고 하는데, 반대로 손질을 잘 안 해서 담이 나쁜 머리로는 앞에 얘기한 솔잎대강이나 쑥대강이 말고도 빗지 않아서 더부룩한 덩덕새머리, 자고 일어나 머리를 빗지 않아서 머리털이 잠자지 않고 한 모숨 붕승하게 일어선 도가머리 같은 것들이 있다.
치렁치렁 (부) 길게 드리운 물건이 이리저리 부드럽게 자꾸 흔들리는 모양.
쓰임의 예 –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단장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정비석의 수필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에서)
– 그 옆으로 아들네들의 상복이 치렁치렁 걸려 있고 자기 상건 하나가 외따로 놓여 있었다. (오유건의 소설 <대지의 학대>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솔잎대강이 – 짧게 깎은 머리털이 부드럽지 못하고 빳빳이 일어선 머리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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