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54 – 깍짓동

튼씩이 2019. 5. 29. 07:08

뚱뚱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들을 살펴보자. 배부장나리는 배불뚝이나 ‘배둘레햄’처럼 배가 불룩하게 나온 사람을 놀리는 말이다. 깍짓동의 깍지는 알맹이를 털어낸 꼬투리를 가리키는데, 꼬투리는 콩과 식물의 열매를 싸고 있는 껍질을 말한다. 깍지는 알맹이를 털어낸 꼬투리이므로 흔히 발음 연습할 때 쓰는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냐 안 깐 콩깍지냐”라는 글귀는 말이 안 된다. 안 깐 콩깍지란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묶어서 한 덩이로 만든 것을 동이라고 하는데, 동은 물건을 묶어 세는 단위로도 쓰인다. 이를테면 먹 열 개, 붓 열 자루, 무명 쉰 필, 생강 열 접, 곶감 백 접, 볏짚 백 단, 조기 천 마리 따위를 한꺼번에 세는 단위가 동이다. 무엇을 끈이나 실 같은 것으로 감거나 둘러 묶는 것을 ‘동인다’고 하는데, ‘동인다’는 말은 ‘동으로 만든다’는 뜻일 것으로 짐작된다.


갈비씨나 말라깽이는 몹시 마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갈비씨는 갈비에 사람을 뜻하는 뒷가지(접미사) ‘씨(氏)’가 붙어서 된 말이고, 말라깽이는 ‘마르다’와 부지깽이, 나무깽이의 ‘깽이’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나무깽이는 부러진 나뭇가지의 짤막한 토막을 뜻한다. 심하게 앓거나 큰 고통을 겪어서 몸이 몹시 파리하고 뼈가 앙상하게 된 사람을 가리켜 ‘겅더리되었다’ 또는 ‘껑더리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서더리탕’이 떠오른다. 물론 표준말로는 ‘서더리’가 아니고 ‘서덜’이다.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 그러니까 뼈, 대가리, 껍질 따위를 통틀어 ‘서덜’이라고 하는 것이다. 육탈(肉脫), 즉 살이 몸에서 빠져 나갔다는 측면에서 ‘겅더리’와 ‘서더리’ 사이에 통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깍짓동 (명) ① 콩이나 팥의 깍지를 줄기가 달린 채로 묶은 큰 단.
                 ② 몹시 뚱뚱한 사람의 몸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쓰임의 예 – 참깨나 콩대를 묶은 깍짓동이 밭머리에 나동그라져 있는 빈 밭도…. (박완서의 소설 <미망>에서)


              – 몸피가 작은 민영수가 깍짓동만 한 사내한테 질질 끌려 나왔다.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겅더리되다 – 심하게 앓거나 큰 고통을 겪어서 몸이 몹시 파리하고 뼈가 앙상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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