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내놓는 예측은 여간해선 들어맞는 법이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한 이유지만, 경제주체들이 꼭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예컨대 어느 가정에서 적자가 늘어나면 씀씀이를 줄이든지, 야근이라도 해서 적자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서 경제학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계속 은행에서 빚을 당겨쓴다면? 실제 이런 나라가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알겠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로, 대통령은 세금을 올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예측이 유난히 안 맞는 나라인 건 이렇듯 ‘비합리’라고 표현하기도 어이없는 선택들이 쌓인 결과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누가 봐도 모자란 후보가 비교적 괜찮은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난다. 이건 다 투표를 하는 주체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결과만 보면 유권자들이 일부러 나라를 망치기로 작정한 것 같은데,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다. 그들의 항변이다. “이런 사람인 줄 나도 몰랐다.” 물론 헷갈릴 수는 있다. 양쪽 후보 모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말이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그 후보가 지난날 어떤 삶을 살았는지, 평상시 소신은 어떤 것인지 등등이다.
예를 들어 복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빨갱이’라며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이가 갑자기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노령연금을 지급한다” “4대 중증질환의 진료비를 국가가 부담하겠다”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 같은 공약을 남발한다면, 이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것일 뿐 진심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니 정말 복지확대가 필요하다면 그 후보에게 표를 던져선 안 되지만, 결국 당선되는 건 그런 후보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매번 “속았다”를 되풀이하는 건 유권자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개성공단 폐쇄를 보자. 남북한 상황에 관계없이 개성공단은 유지한다는 약속을 어긴 건 둘째치고, 그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준 것일까? 국내 최고의 개성공단 전문가 김진향이 쓴 <개성공단 사람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개성공단은 퍼주기다? 아니다. 북측에 비해 오히려 우리가 몇 배는 더 많이 퍼오는 곳이다. 매년 1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투자해서 최소 15억~3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고 가져오는 곳이다.”
2013년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때 대체할 만한 곳을 찾던 기업들이 “해외 어디를 가 봐도 개성공단만큼 경쟁력을 가진 곳은 없다”라고 했단다. 개성공단의 수익이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는 게 직접적인 폐쇄 이유지만, 개성공단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월 15만원에 불과하고, 이들이 중동에서 받는 임금이 1000달러임을 감안하면 이 조치가 북한에 얼마나 타격을 줬는지 의문스럽다. 우리 기업들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 이 자해적 조치에 찬성하는 비율이 50.7%로 반대(41.2%)보다 높았고, 대구·경북 지역의 찬성률은 71.9%였다. 정말 궁금하다. 이분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폐쇄했어도 같은 대답을 했을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일명 사드(THAAD)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그 미사일을 요격해 우리 국민과 시설을 보호한다는 게 바로 사드의 배치 이유. 저 멀리 바다를 건너 날아온 미사일이면 모를까, 코앞에 있는 북한이 쏜 미사일을 사드가 지켜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재를 가한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7.1%가 찬성했고, 반대는 26.2%에 그쳤다. ‘사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분들이 모여서 내는 목소리에 기대어 “국민여론이 사드를 더 찬성하고 있다”고 우겨도 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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