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그이는 비에 ‘긋다’의 ‘그’, 명사화 어미 ‘-이’가 합쳐져 된 말이다. ‘긋다’라는 말은 ‘비가 잠시 그치다’ 또는 ‘비를 잠시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즉 자동사이기도 하고 타동사이기도 하다.
비갈망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에서 쓰이는 말인데, ‘비를 맞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책을 세우는 일’을 뜻한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에는 ‘비료가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게 비닐보로 덮어 비갈망을 하다’라는 예문이 실려 있다. 갈망은 ‘어떤 일을 감당해 수습하고 처리함’이라는 뜻이고, 갈무리는 ‘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 또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함’이라는 뜻이다. 나훈아가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한 <갈무리>의 가사를 보자.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이제는 정말 잊어야지/오늘도 사랑 갈무리’. 여기서 사랑 갈무리는 ‘사랑을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 즉 ‘사랑의 지속’일까, 아니면 ‘사랑을 처리해(?) 마무리함’, 즉 ‘사랑의 종말’일까. ‘이제는 정말 잊어야지’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나훈아의 <갈무리>는 사랑을 이제는 ‘쫑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갈망이나 갈무리는 둘 다 ‘감추거나 저장하다’라는 뜻의 옛말 ‘갊다’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비설거지도 비갈망과 비슷하게 비가 올 때,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지는 현상은 비거스렁이라고 한다. 그런데 거스렁이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비슷하게 생긴 거스러미, 거스르다, 거스러지다 같은 말을 참고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다.
빗밑은 ‘비가 그쳐 날이 개는 속도’다. 날이 개는 속도가 빠르면 “빗밑이 가볍다”고 하고, 반대로 그 속도가 느리면 “빗밑이 무겁다”고 하는 것이다.
비그이 (명) 비를 잠시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는 일.
쓰임의 예 – 그는 처마 밑에서 비그이를 하며 그 갈매나무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김소진의 소설 『김풍근 베커리 약사』에서)
- …줄기의 퉁테가 서까래 폭이나 굵어진 으름덩굴이 느릅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느릅나무의 둥치가 거우듬하게 기울도록 느릅나무 가지를 반나마나 뒤덮은 탓에 웬만한 소나기는 그 밑에 들어서서 비그이를 해도 넉넉할 정도로 녹음이 두터웠던 것이다. (이문구의 소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비설거지 – 비가 올 때,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 =비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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