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62 – 곰비임비

튼씩이 2019. 9. 28. 11:56

하늘은 매섭고 흰 눈이 가득한 날

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 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비임비 임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 번도 쉬지 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일랑은 쓰리지 아니한데

님 그리는 온 가슴만 산득산득하더라

임 그리는 온 가슴만 산득산득하더라


(이응수 작사, 라원주 작곡, 송골매 노래 <하늘나라 우리 님>)

 

지금은 DJ MC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배철수가 보컬을 맡았던 노래다(몇 개 낱말을 맞춤법에 따라 바로잡았지만 제목까지 손대기가 뭣해서 은 그냥 두었다). 작사자로 돼 있는 이응수도 송골매(아니면 활주로든가) 소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실 이 노랫말의 많은 부분은 아래 적은 옛 시조에서 빌려 온 것이다.

 

보션 버서 품에 품고 신 버서 손에 쥐고 곰븨님븨 님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 듸 듸 갈희지 말고 워렁충창 건너가셔 정()엣 말 겻눈을 흘긧 보니

(청구영언에 실린 사설시조 <님이 오마 하거늘> 부분)

 

위아래를 비교해 보면 곰비임비의 옛말이 곰븨님븨임을 알 수 있다. ‘천방지방천방지축의 동의어로 너무 급해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고, ‘허위허위손발 따위를 이리저리 내두르는 모양이나 힘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양을 나타낸다. ‘산득산득하다싸늘한 느낌이 계속 있다는 뜻이다. 시조에 나오는 워렁충창은 급히 달리는 모양이나 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후다닥’ ‘후닥닥’ ‘허둥지둥같은 말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북한의 사전에는 워렁충창과 비슷한 와당퉁탕이라는 낱말이 실려 있다. ‘잘 울리는 마룻바닥 따위를 요란스럽게 구르며 걷거나 뛰는 소리라는 뜻이다.

 

 

곰비임비 ()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쓰임의 예 병일은 곰비임비 술을 들이켰다. (현진건의 소설 적도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천방지방 너무 급해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모양. =천방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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