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표준어규정 해설

제2부 표준 발음법 제3장 음의 길이 제7항

튼씩이 2019. 10. 21. 08:19




이 조항은 장단의 변동 중에서도 특히 장모음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에는 앞의 제6항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모음이 단어의 둘째 음절 이하에 놓일 때 일어나는 것도 있지만, 이 조항에서는 용언 어간 뒤에 어미나 접미사가 결합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체언의 경우에는 특정한 조사 앞에서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용언 어간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1음절로 된 용언 어간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하는 경우이다. 구체적으로는 ‘아’ 또는 ‘어’로 시작하는 어미나 ‘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용언 어간에 결합할 때 어간의 장모음이 짧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제시된 예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어미의 첫음절에 모음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어간의 장모음이 그대로 유지된다. 가령 ‘밟다’와 ‘알다’를 비교해 보면 동일한 어미가 결합하더라도 ‘밟으면[발브면]’에서는 장모음이 짧아지지만 ‘알면[알:면]’에서는 장모음이 그대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어미의 첫음절에 ‘으’가 실현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간의 장모음이 짧아지는 현상은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뿐만 아니라 모음으로 끝나는 어간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괴다[괴:다], 뉘다[뉘:다], 호다[호:다]’ 뒤에 ‘아’나 ‘어’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하면 ‘괴어[괴어], 뉘어[뉘어], 호아[호아]’에서 보듯 어간 모음의 길이가 짧게 실현된다.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어간의 장모음이 짧아지는 현상은 일부 예외가 있다. 조항에 제시된 ‘끌다, 벌다, 썰다, 없다’ 등이 그러하다. 이 외에 ‘굵다, 얻다, 엷다, 웃다, 작다, 좋다’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 용언의 어간들은 뒤에 어떤 어미가 오든지 어간의 장모음이 그대로 유지된다.


둘째, 1음절로 된 용언 어간 뒤에 피동, 사동의 접미사가 결합하는 경우이다. 피동과 사동의 접미사는 ‘-이-, -히-, -리-, -기-’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어떤 것이 결합하든지 어간의 장모음은 짧아진다. 물론 이러한 현상도 예외가 있다. 그런데 그 예외는 앞서 살핀 첫 번째 부류의 예외와 동일하다. 그래서 ‘끌다, 벌다, 썰다, 없다’에 피동 또는 사동 접미사가 결합한 ‘끌리다[끌:리다], 벌리다[벌:리다], 썰리다[썰:리다], 없애다[업:쌔다]’에서는 어간의 장모음이 그대로 유지된다. 즉 이 단어들은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든 피동이나 사동의 접미사가 오든 어간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 것이다.


[붙임] 용언의 활용형이 포함된 합성어의 장단이 활용형의 장단과 일치하지 않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 원래의 활용형은 길이가 길지만 이것이 합성어의 첫 요소로 쓰였을 때에는 길이가 짧게 발음되는 단어들이 있다. 예로 제시된 ‘밀물, 쏜살같이, 작은아버지’의 ‘밀, 쏜, 작은’이 모두 그러하다. 이 단어들이 ‘문을 밀 경우, 쏜 화살, 작은 손수건’ 등과 같이 활용형으로 쓰일 때에는 ‘밀[밀:], 쏜[쏜:], 작은[자:근]’과 같이 장모음이 나타남에 비해 합성어의 첫 요소로 쓰일 때에는 짧은 모음이 나타난다. 이러한 예외적인 현상은 일부 활용형에서만 나타날 뿐, 모든 용언의 활용형이 첫 요소로 쓰일 때 그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