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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 - 서울역사편찬원

튼씩이 2020. 5. 4. 14:04




< 목  차 >


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본 중건 경복궁의 특징


경복궁 중건 비용,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갔을까?


원납전! 원해서 내는 돈인가, 원망하며 내는 돈인가?


궁궐을 세우기 위해서 철거를 한다고? 영건의 아이러니!


과연 서민들이 자식처럼 달려와 궁궐을 지었을까?


국가의 막중한 공사를 방해한 부정행위들


경복궁 공사의 지연, 화마와 서양오랑캐의 습격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의 작품? 궁궐을 지은 이름 없는 장인들


대규모 토목공사 현장의 관리감독자들


경복궁 중건 현장은 좋은 일자리였을까?


공사를 송축하는 노래, 노동의 고달픔을 담은 노래


돈을 아끼는 또 다른 방법, 공사기간을 줄여라


당대 첨단 기술과 공법으로 다시 세운 경복궁


기원과 열망을 담은 영건 현장의 의식행사


궁궐을 지키는 녀석들, 경복궁의 서수상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은 일본 와세다대학에 소장된 '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내용과 흥미로운 주제들로 구성됐다.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에는 중건된 경복궁의 건축적 특징을 비롯해 원납전과 인력동원의 실상, 부정행위들, 공사 현장의 노동자·장인·관리자, 중건의 당위성과 공사 독려의 허실을 보여주는 노래 등이 담겨있다.

또 당시 첨단 기술과 공법의 사용, 기원과 열망을 담은 각종 상징물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경복궁 중건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행위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규모 토목 공사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실제 경복궁 현장에서는 궁궐에 쓸 못을 몰래 빼돌리다가 적발된 석수, 품삯만 받고 땡땡이 친 일꾼들, 겨울 부실공사로 붕괴된 신무문 일대의 담장이 문제되기도 했다.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일꾼들에게 밥을 파는 밥집 주인이 밥값을 미리 받아 챙기고 가게를 철거해서 도망간 경우도 있었다. 


경복궁 공사 과정의 사사로운 부정행위 뿐 아니라 1866년 발생한 병인양요도 경복궁 중건 공사를 방해했다. 궁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1866년 8~10월 프랑스 함대는 조선의 연안 측량을 시작으로 강화도를 침략했다. 당시 조정에서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고종은 중건 공사를 강행하며 내부결속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는 조선 초에 세워진 경복궁처럼 전각에 청기와를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청기와는 조선 초 경복궁을 창건할 때 근정전과 사정전에 사용한 특별한 기와였지만, 중건 당시에는 그 제작 기술이 끊긴 상황이었다.

중건 당시 이를 재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사기그릇을 만드는 흙으로 조성하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일반 흙을 사용하고 안료를 발랐더니 색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청기와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간 이유가 임진왜란 이후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도공조직의 와해와 함께 자연스레 맥이 끊긴게 이유라는 대목에서는 비참함을 금할 수 없었고, 심지어 19세기 말에는 일본에서 청기와를 수입하기도 했다는 사실에는 일본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경복궁 중건에는 이름 없는 장인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들을 알아보자.


조줄장 - 몇 겹의 납줄을 꼬아서 줄을 만드는 장인


거장 - 수레를 만드는 장인


기계장 또는 부계장 - 부계를 설치하는 장인 ※ 본 건축물을 짓기 전에 장인들이 높은 곳에 올라 작업할 수 있도록 층층 이 나무를 엮어 만드는 가설물을 부계라고 한다. 요즘엔 부계 대신에 비계라고 부른다.


녹로꾼 - 녹로는 물건을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도구로 지금의 크레인 같은 장비다.


작예꾼 - 목재를 벌채하고 운반하는 사람들


톱장 - 공사현장에 도착한 목재를 가장 먼저 가공하는 사람


선장 - 강가에서 배를 만드는 장인


대목장 - 목수는 건축물의 주된 가구를 만들며, 창호, 난간 등 세밀한 부분은 소목장이 담당했다. 오늘날에는 목수보다 대목장이라고 흔히 부른다. 옛 문헌에 대목장은 등장하지 않으며 통상적으로 목수라고 기록했다.


소목장 - 각종 가구를 비롯해 여나 연과 같은 탈 것, 제사에 필요한 각종 제기 등 많은 종류의 목재 기물을 만드는 장인


조각장, 목혜장 - 조각장은 물건에 조각을 하는 장인이며, 목혜장은 나막신을 만드는 장인


석수 - 돌을 떠내고, 다듬고, 제자리에 안치는 일을 하는 장인 ※ 모군 - 석재 운반 담당 일꾼


야장(대장장이) - 부재의 긴경을 위한 못, 창호를 설치하기 위한 돌쩌귀, 배목과 같은 여러 종류의 철물을 만드는 장인


니장 - 요즘의 미장공으로 목수가 만든 건물 외벽에 흙을 발라 벽을 만드는 장인


개장, 개와장 - 구운 기와를 지붕에 얹는 작업을 하는 사람


안자장 - 소나 말 위에 얹은 안장이나 마구를 제작하는 장인


가칠장 - 단청은 바탕칠인 가칠단청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을 칠하는 장인



원납전에 대한 평가 -1. 경복궁을 다시 짓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고 강제로 원납전을 걷고 도성문을 드나드는 백성에게 문세를 걷어 백성의 불만을 샀다. 2. 원납전을 받아 국가가 주도적으로 매관매직을 하였다. 3. 원납전은 순수한 의미에서 스스로 내는 돈이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방의 동장 등 유력자를 통한 간접 동원 없이는 일반민 개개인의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 61쪽 -


경복궁은 물론 다시 지은 궁궐이다. 그러나 경복궁은 궁궐 안팎, 나아가 도성 안에 퍼져있던 주요 기구와 각 관청, 군사기구를 연결하는 공간적 중심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궁궐이기도 했다. 대원군은 다시 지은 경복궁을 새로운 정치운영의 중심, 새로운 행정 및 군사 시스템의 중심,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사회질서의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 100쪽 -


1866년 11월에 호대당백전 즉 당백전의 주조가 개시되었다. 그 목적은 경복궁 중건의 비용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중략) 1867년 5월에 철폐되었으니 당백전의 주조가 장기에 걸친 것은 아니었다. - 137쪽 -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수도들은 대체로 『주례』「고공기」등 고대 중국 문헌을 통해 당대인들이 이해한 일종의 도성계획 원리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 핵심은 도성의 중앙에 궁궐을 두고 좌우로 종묘와 사직을 두며 주변을 성곽으로 둘러싸는 행태의 도시계획 기법이다. (중략) 고종대 시행된 경복궁의 중건은 한양도성의 본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로서, 비단 궁궐 내로 국한된 공사가 아니라 육조거리를 위시한 경복궁의 주변까지 아우르는 대공사였다.  - 248쪽 -


이러한 글 외에 함께 모셔져 있던 기물로 용 그림들이 있다. 붉은색 종이에 용을 그린 그림이 들어있고, '水' 자를 하나의 윤곽으로 만들고 그 안에 작은 '龍' 자를 1000여 자가량 써서 가득 채운 종이도 함께 있다. 여기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용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면서도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능력을 가진 존재였다.  - 31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