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의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에게 큰 승리를 안겨준 청산리 전투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벌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였던 청산리 전투의 전승 100주년을 기리고자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군은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에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독립군은 1919년 하반기부터 국내진입작전을 펼쳤고, 1920년 들어서는 임시정부를 지지하면서 북간도 지역의 독립군 단체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습니다. 그 직후에 일어난 전투가 1920년 6월 7일에 일본군과 싸워 승리한 봉오동 전투입니다. 일본은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만주의 독립군을 없애기 위해 만주의 군벌에 압력을 가하는 외교적인 노력과 더불어 대규모 군사 동원을 계획하였습니다. 일본은 9월에 마적이 훈춘 주재 일본영사관을 습격하는 사건을 꾸민 뒤 이를 명분 삼아 중국 땅인 만주에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독립군은 일본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군사력을 비축하고자 ‘북로군정서군’, ‘홍범도연합부대’ 등으로 나뉘어 북간도를 떠나 백두산 방향으로 이동하는 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시 백두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던 독립군을 일본군 기병 등이 추격해 오자 독립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싸웠습니다. 그 첫 전투가 1920년 10월 21일에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이 싸워 승리한 백운평 전투입니다. 그리고 10월 22일, 청산리 전투에서 가장 큰 싸움이었던 어랑촌 전투에서 북로군정서군은 홍범도가 지휘하는 연합부대와 일본군을 협공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이후부터 10월 26일 새벽까지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연합부대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은 각자 싸우거나 함께 힘을 합하여 싸우며 엿새 동안의 크고 작은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이기는 쾌거를 이루었고 독립군의 기본 군사력을 비축할 수 있었습니다. 6일간 치러졌던 청산리 전투는 사실상 한국 독립운동사 최대의 승전보이자 ‘대첩(大捷)’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청산리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는 독립군의 전투정보가 실린 독립신문 제88호(1920년 12월 25일자)의 보도기사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던 서양화가 김태(1931~)의 민족기록화 청산리 전투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념우표를 통해 100년 전 이맘때 울려 퍼진 일본군을 향한 독립군의 함성을 떠올리며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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