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승정원은 지금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하들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이나 서류는 모두 승정원을 거쳐야 했고, 임금의 명도 승정원을 통해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시도 임금의 주변에 늘 있었지만 그들은 정무에 관여할 수기 없었기 때문에 승정원에 견줄 바가 아니었지요. 그 승정원에는 정3품 당상관 이상의 승지 여섯 명이 각각 업무를 분담하고 있었습니다.
중종 때 조원기라는 사람은 그런 막강한 승정원의 동부승지를 지낸 사람이었지만 그의 밥상에는 늘 소금과 나물과 오이뿐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벗이나 친척들이 먹을 것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것이 조금이라도 의(義)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반드시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원기는 이렇게 청렴하게 살았어도 그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았고 일흔일곱 살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
그런 조원기는 우리나라 유학의 우두머리인 조광조를 조카로 두었습니다. 태생이 강직했던 조광조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조원기는 조카에게 “사람이 새처럼 저 혼자서만 하늘 위로 날아가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들짐승처럼 저 혼자만 산 속에 굴에 들어가 숨어 살 수도 없다.(凡人群居天之中 不可以高飛遠走 則必須小同於俗庶 免爲所嫉)”라고 타일렀습니다. 지금 세상에 조원기 같이 막강한 자리에 앉은 그 누구가 조원기 만큼 청렴한 관리로 남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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