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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 장한업

튼씩이 2021. 3. 28. 16:45

 

‘우리나라’ ‘조선족’ ‘다문화가정’ ‘쌀국수’ ‘국민여동생’ 등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쓰는 단어들이다. 국내 만연한 차별의 시선을 고치고자 노력해 온 장한업 교수는 『차별의 언어』에서 ‘왜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할까?’ ‘왜 이탈리아 국수는 ‘스파게티’라고 부르면서 베트남 국수는 ‘쌀국수’라고 부를까?’ ‘왜 ‘다문화’와 ‘타문화’를 동의어처럼 사용할까?’라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 단어들 속에 담겨 있는 단일민족의 허상과 그에 따른 차별 의식을 다루고 있다. 그는 ‘우리’라는 말이 그에 해당하는 집단을 울타리처럼 보호하면서도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을 배척하는 단어라고 밝히고, ‘국민000’ ‘000여왕’이라는 호칭의 과도한 사용에서는 집단주의와 국군주의의 냄새를 읽는다. 또 같은 재외동포인 조선족은 재중동포라고 부르지 않는다거나 한국인 결혼이주여성을 ‘베트남신부’ ‘캄보디아신부’ 식으로 출신국을 강조해서 부르는 차별적인 행태라고 꼬집는다.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이들과 더불어 더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가 녹아 있다.   -  YES24  책소개에서 -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국인들이 주소를 ‘내림차순’으로 쓴다는 점입니다. 맨 먼저 도(道)를 적고, 그다음에 시(市)를 적고, 구(區)와 동(洞)을 적은 다음, 번지를 적지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을 적은 다음, 이름을 적습니다. 성이 홍이고, 이름이 길동이면 홍길동이라고 적지요. 홍씨 가문에서 태어난 ‘길동’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길동이라는 이름은 도, 시, 구, 동, 번지라는 다섯 개의 지역 집단과 홍이라는 한 개의 혈연 집단을 거쳐야만 비로소 나타납니다.

 

서양의 경우는 어떨까요? 서양에서는 이름을 가정 먼저 적은 다음, 성을 적습니다. 주소는 가장 작은 지역에서부터 가장 큰 지역 순으로 적지요. 이는 개인을 집단보다 우선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를 근거로 서양은 한국보다 개인주의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30쪽 -

 

(버지니아 공대 살인 사건) 범인이 중국계가 아니라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인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사건을 보고받은 즉시 미국 정부에게 세 차례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한다는 전문을 보냈습니다. 이태식 주미 대사 역시 추모 예배에 참석해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서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라고 말했지요. 미국 내 한인들도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으로 미국 내 한국인의 이미지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또 한인들에 대한 보복 살인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요.
그런데 미국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한국과는 무관한 일, 즉 조승희라는 한 사람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민자들을 미국 사회에 잘 적응시키지 못한 자신들의 정책을 탓했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한 한국인의 과민 반응에 대해 의아해했지요. 《LA 타임스》가 “참사 직후 한인들의 촛불 예배 등의 과민 반응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라고 지적할 정도였습니다.  - 35쪽 -

 

 

 

미국에 사는 한인은 재미동포 또는 재미한인, 일본에 사는 한인은 재일동포 또는 재일한인이라고 부르면서 유독 중국에 사는 한민족만 조선족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그들을 만나면 이들이 왜 만주로 갔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지금은 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재중동포나 재중한인 등으로 바꿔 불러 보는 건 어떨까요? - 181쪽 -

 

 

퍼와 스파게티는 각각 베트남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인데 우리는 왜 퍼는 ‘쌀국수’라고 부르면서 스파게티는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걸까요? 다시 말해, 왜 스파게티를 이탈리아 밀국수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이 문제가 베트남과 이탈리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베트남은 못사는 나라, 이탈리아는 잘사는 나라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곳이 패션의 나라이자 문화의 나라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요. 이런 이분법적인 시각과 편견이 음식 이름에도 투영된 듯합니다. 즉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음식은 음식만 받아들이고 언어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잘사는 나라에서 온 음식은 그 음식과 함께 언어도 받아들이지요.   - 200쪽 -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가진 편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서로가 다름을 알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