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아슬아슬한 희망 - 김기석

튼씩이 2021. 5. 16. 16:55

 

가끔 지렁이를 질투한다. 지렁이는 나뭇잎, , 쓰레기 등 버려진 유기물을 제 몸무게만큼 먹어치우는 생태계의 청소부이다.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하고 기름진 분변토를 내놓아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그런가 하면 흙 속에 길을 내서 토양에 공기와 수분이 드나드는 통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지렁이를 닮을 수 있을까? 내게 주어진 일상의 모든 것을을 내 속으로 끌어들여 정화한 후 그것을 세상의 선물로 내놓을 수 있을까?  - 5-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처럼 처신하는 이들을 잠잠케 하려고 즐겨 인용하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노자가 언급한 천지불인(天地不仁), 즉 천지는 사사로운 정에 끄달리지 않는다는 말과 내남없이 일치되는 말이다. 장엄한 말이다. 하지만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겹쳐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문화혁명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중국 작가 라오서의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는 비는 모든 이에게 내리지만 결코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 내리기 때문이다.

 

비가 개인 후에, 시인들은 연잎의 구슬과 쌍무지개를 읊조리지만, 가난뱅이들은 어른이 병이 나면 온 식구가 굶는다. 한 차례의 비는 기녀나 좀도둑을 몇 명이나 더 보태주는지,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을 얼마나 내는지 모른다.

 

그의 문장과 만난 후 일상에 뿌리 내리지 않은 사상이나 관념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 160~161-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족한 줄 알면 욕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욕망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꾸만 남을 위해 좋은 것을 남겨두은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은 소비사회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함께 누려야 할 것을 사유화하는 것을 일러 죄라 한다. ()라는 글자는 그물 망()’아닐 비()’가 결합된 단어이다. 죄는 우리를 그물에 갇힌 듯 부자유하게 만든다. 진정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자꾸 과잉에 대한 욕망을 흘려보내야 한다. 천천히 걷는 일이 도움이 된다. - 167-

 

 

《아슬아슬한 희망》은 제목 그대로 갈수록 암담하고 점점 나락의 길을 걷고 있는 시대에 참된 삶의 의미를 묻고 사람과 역사에 대한 ‘희망’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어루만지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현실을 외면한 채 하늘을 말할 수는 없었”고 “하늘을 말하지 않고는 땅의 희망을 말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신앙과 삶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깨우침을 드러내준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팍팍한 일상과 암울한 시대에 세월이 참 무상하지만 불멸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yes24, 책소개 -